[전임자 정책 뒤집기]“난 다르다” “더 내놔라”

  • Array
  • 입력 2010년 8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난 다르다” 차별화-대립 ‘이름’ 알리기
“더 내놔라” 지역이익 챙기려 정부압박

《6·2지방선거로 지방권력이 바뀐 지역 곳곳에서 전임자가 추진했던 역점 사업은 물론 국책사업까지 대폭 수정되거나 백지화될 위기에 놓였다. 완공을 앞둔 대형 사업도 포함돼 있다. 일부 단체장은 손해배상을 감수하더라도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태도다. 전임자가 만들거나 동의한 정책에 오류가 많다는 게 이들의 주장. 전임자와 정책적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예산과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6·2지방선거 당선 직후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에 위례신도시 사업 참여를 요구하면서 “이제 개발행정에 있어서도 자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자치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겠다”는 이 시장의 결심은 취임 전 호화청사 매각, 위례신도시 행정협조 중단 선언 등으로 구체화됐다. 취임 후에는 판교특별회계 전입금 지불유예(모라토리엄) 선언, 보금자리지구 개발계획 철회 요청으로 이어졌다.

이 시장이 지불유예라는 전례없는 돌출행동으로 주목을 받으려고 한 의도에 대해 주변에서는 의아해하면서도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임 단체장과의 차별화 △공약사업 강조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통한 전국적 인지도 상승 등의 ‘부수효과’를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선 5기 출범 이후 전국 곳곳에서 전임 단체장 정책 및 국책사업 ‘뒤집기’가 속출하고 있는 이유다.

○ 무더기 교체의 후유증


전남 함평군은 2013 함평세계나비곤충엑스포 예산을 대폭 축소할 방침이다. 함평나비축제로 불리는 이 행사는 가장 성공적인 지역 축제로 꼽힌다. 그러나 안병호 신임 군수는 “주민 소득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는 공정이 70%가 넘은 경전철 사업의 추진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은 전임 구청장이 추진했던 모노레일 사업 대신 ‘순환형 지하 경전철’을 추진 중이다.

새 단체장들의 정책 번복이나 보류는 이번 지방선거 때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번 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 16곳 가운데 8곳의 단체장이 바뀌었다. 기초는 228곳 가운데 124곳(54.4%)에서 단체장이 교체됐다. 특히 서울(92.0%)과 인천(80.0%), 경기(67.7%) 등 수도권의 기초단체장 교체율이 높다. 이들 지역의 정책 혼선이 심한 이유다.

여기에 지역 이익을 확보하려는 단체장들의 ‘의욕’이 더해지면서 국책사업에 대한 반발이 만만찮다. 우근민 제주지사가 법원이 적법판결을 한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요청한 것은 정부를 압박해 추가적인 예산지원 등 반대급부를 더 얻어내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양기대 경기 광명시장이 광명시흥 보금자리지구 개발과 관련해 보완대책을 요구하며 행정협조 거부를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 ‘정치적’ 결정에 갈등 증폭

새 단체장들의 결정이 다분히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것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문제가 된 지역은 대부분 후보단일화에 의해 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들 뒤에는 정책 자문 등을 통해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야당과 시민단체가 포진하고 있다. 단체장 스스로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판단해도 정치적 배경 때문에 ‘후퇴’가 어려운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성남1공단 공원화 같은 공약사업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교육감의 경우 개인적인 이념성향이 정책 결정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올 6월 자율고로 지정된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에 대해 두 달 만에 지정을 취소하는 공문을 보냈다. “교육감의 교육철학과 공약에 따랐다”는 것이 전북도교육청 측 설명이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2일 초중학생 대상 도단위 학업성취도평가를 전면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결정은 지역사회 내 소모적인 갈등을 낳고 있다. 경기 성남시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불유예 선언 등과 관련해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추진까지 주장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송영길 시장이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 건립을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서구지역 정치인과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