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鄭 사퇴론’ 퍼뜨리고… MB는 “왜 그러나” 역정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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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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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 거취 놓고 여권 ‘희한한 신경전’

정운찬 국무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여권 내부에서 정상적 수준을 벗어난 외곽 때리기와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 총리 둘러싼 이상기류

6일 오후 여권 일부 인사가 “정 총리가 금주 중 공식적으로 사퇴할 것 같다”는 얘기를 흘렸다. 일부 방송은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 총리가 모레(8일)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사퇴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총리실은 이런 보도를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 및 제19회도로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자신의 사의를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정 총리의 표정이 무거워 보인다. 양회성기자
정운찬 국무총리가 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 및 제19회도로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자신의 사의를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정 총리의 표정이 무거워 보인다. 양회성기자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총리께 직접 여쭤봤다. 그런 일 없다고 한다”고 했고, 다른 관계자도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기자회견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뜻에 맡기겠다는 스탠스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만두라는 대통령 뜻을 아직 전해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총리실 일부 관계자는 “총리가 사퇴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말한 ‘여권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무례를 넘어 한 나라의 총리에 대한 모독이다”라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총리 교체가 이 대통령의 진짜 의중이라면 조용히 귀띔해주면 알아서 그만둘 텐데 왜 외곽을 치는 방식으로 압박을 하느냐는 비판이었다.

밤늦게 또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정 총리가 3일 이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사의를 강력히 표명했으며 이 대통령은 당시 정 총리의 사의를 만류했으나 정 총리의 사퇴 의지가 워낙 완강해 더 만류하지 못하고 ‘사실상 수용했다’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발언이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7일 오전 이 대통령은 정정길 대통령실장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정 총리 사퇴 관련 보도에 대해 “누가 이 같은 얘기를 하고 다니느냐”며 강도 높게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는 다른 수석비서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특정 인물을 지목하지는 않았다는 전언이다.

이어 정 실장은 정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언론 보도에 대한) 대통령의 질책이 있었다”며 유감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일부 인사가 ‘이 대통령, 정 총리의 사의 수용’ 등 자신들의 해석이나 희망사항을 담은 발언을 흘리면서 정 총리를 압박한 데 대해 정 총리 측에선 내부적으로 한때 정면대응하자는 강경 기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 실장의 전화를 받은 정 총리가 자제를 당부함으로써 더 이상의 확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여권의 한 인사는 전했다.

○ 알 수 없는 MB 의중

이 대통령은 인적쇄신의 큰 그림에 대해 핵심 참모들에게도 의중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정 총리는 이 대통령이 북중미 3국을 순방하던 지난달 30일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부결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데 대해 이번 안을 설계했던 책임자로서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당시 측근들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표현하면 언론에서 ‘사의 표명’으로 해석할 것이 뻔하니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하자”고 건의했으나 정 총리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표현을 고집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정 총리는 이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온 3일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독대하고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뜻을 직접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부결은 정 총리 책임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는 독대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에 대해선 ‘신의(信義)’ 차원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일절 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총리실 측은 정 총리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이 대통령에게 ‘프리핸드’를 줬다는 공식 태도를 보이면서도 ‘재신임’ 가능성 쪽에 방점을 두는 기류가 엿보인다.

그러나 청와대와 내각 개편을 고심 중인 청와대 내에선 ‘사퇴 불가피론’을 펴는 이가 많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차원이 아니라 집권 중후반기 새로운 진용을 짜야 하는 만큼 이 대통령에게 답을 묻기 전에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청와대 몇몇 참모를 포함한 여권 인사들이 ‘총대’를 메고 정 총리에게 ‘대통령이 미련을 갖지 않도록 스스로 확실하게 물러나 달라’는 취지의 압박을 하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총리실 주변에선 정 총리를 흔드는 것은 총리 교체 여부가 청와대 수석비서관급이나 장관 인사의 폭과 정치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청와대의 한 참모도 “장관이나 수석 몇 명 바뀐다고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느냐. 총리와 대통령실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누가 사퇴설을 흘리느냐”는 질책성 발언을 함에 따라 당분간 총리 교체론은 잠복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개편을 먼저 하고 총리 교체를 포함한 내각 개편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결정하겠다는 태도이며 그런 상황에서 ‘총리 사의 수용’ 얘기가 나오자 진노했다는 게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해석이다.

이 대통령은 총리 교체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정 총리를 경질하는 게 맞는지, 교체한다면 정 총리를 능가할 만한 대안은 있는지 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의욕 보이는 정 총리

사임 논란 속에 정 총리는 ‘능동적인 총리실 운영’을 강조하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일 국무총리실 간부회의에서 정 총리는 “정답은 현장에 있다”며 “어둡고 그늘진 부분을 세심히 챙기고 배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창영 공보실장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까지 주어진 책무를 하겠다는 총리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리실 측은 설령 총리가 교체된다고 해도 청와대 참모진 개편 및 한나라당 전당대회(14일), 7·28 재·보선 결과 등에 따라 후임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직 시간 여유는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임 임박설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자 정 총리가 ‘할 일은 계속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에 실패한 총리’로 기억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주변 인사들은 전했다. 그동안 세종시 문제에 몰두하다 보니 정작 본인의 주 관심사였던 교육, 경제 등 분야에 충분히 시간과 역량을 할애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든 정 총리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관심 분야에 족적을 남길 만한 정책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총리 제자그룹들 사이에선 “더는 홍진(紅塵) 속에 있지 말고 현실 정치세력과 절연(絶緣)하라”는 주장과 “아직 총리로서 뜻을 제대로 못 펴본 것 아니냐. 이럴수록 조용히 대응하는 게 낫다”는 양론이 팽팽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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