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확성기-라디오방송 ‘3종 세트’로 北주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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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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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왜 두려워하나
“김정일은 호색-살인범” 고발
작년 9·9절에 날아와 발칵
軍, 강경대응 안하면 불경죄

민간단체는 어떻게 보냈나
달러-위안화 동봉해 유혹
라디오-인권DVD 넣기도
특수풍선 평양까지 날아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지도부는 탈북자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의 대북 전단(삐라) 발송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2008년 10월 남북 군사실무회담 때 북측 대표단은 민간단체의 전단 수백 장을 모은 박스를 회담장에 가져와 던지기도 했다. 북한 군부는 16일에도 이 문제를 거론하며 개성공단 통행 제한 및 차단은 물론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정부 대응조치로 군의 대북 전단 발송이 시작되면 반발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왜 남측의 삐라에 이처럼 민감한 것일까.

북한 전문 인터넷신문인 데일리NK의 손광주 편집장은 “북한은 선전선동의 나라이기 때문에 삐라를 통한 선전전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삐라로 인한 외부 정보의 유통이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민간이 발송해온 전단의 내용은 신랄하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9·9절에 남측 민간단체들이 보낸 전단이 평양 한가운데 있는 김일성광장에 떨어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전단의 제목은 ‘김정일을 고발(신고)합니다’였다. 북한의 체제유지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에 보내는 고발장 형식의 전단은 그의 죄목을 ①특수절도죄 ②특수강간 및 미성년 폭행죄 ③경력기만 및 특수사기 ④납치 및 특수살인죄 ⑤특수 정치범 등 다섯 가지로 명시했다.

북한은 선전선동과 함께 외부 정보의 통제를 기반으로 체제를 유지한다. 민간단체들이 전단과 함께 정보를 유입시키는 수단도 다양하다. 자유북한운동연합과 납북자가족모임 등은 국내 라디오방송을 청취할 수 있는 휴대용 라디오나 대북 단파 라디오와 함께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릴 수 있는 뮤지컬 ‘요덕스토리’나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등의 소식을 담은 DVD 등도 함께 보내고 있다.

주민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인센티브도 강화됐다. 과거에는 라면이나 과자 등 먹을 것들을 풍선에 동봉했지만 최근에는 달러나 중국 위안화 등 현금을 함께 넣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과 군인 등이 삐라 줍기에 열중하면서 북한 지도부가 속을 끓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북한 당국자들은 ‘삐라에 후천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균이 묻었다’는 등의 악성 선전을 하고 있지만 믿는 주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단의 운송 기술도 갈수록 나아졌다. 탈북자인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은 2003년부터 풍선을 이용한 전단 살포를 시작했다. 북한 과학원 연구원 출신인 이 단장은 홀로 연구를 거듭해 대형비닐풍선을 이용한 3단계 전단 살포 기술을 개발했다. 이 방식은 다른 탈북자들에게도 전수됐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풍선과 전단 꾸러미를 얇은 금속선으로 잇고 금속선이 화학시약을 통한 산화반응으로 1, 3, 5시간 만에 끊어지는 기술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임진각이나 서해상에서 날린 전단 풍선이 북한 지도층이 모여 사는 평양 시내까지 가는 것에 대해 지도부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단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자관계와 호화생활 등을 다루고 있어 북한 군부 등이 살기 위해서라도 과격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이 만든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김 씨 부자를 비방한 자는 물론이고 이를 보고 방치한 사람도 죄인 취급을 한다. 과거 남한을 방문했던 북한 여성 응원단이 비에 젖은 김 위원장의 사진을 보고 남측에 항의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전방의 北장병, 가요-스포츠에도 싱숭생숭

남한 소식 ‘비판여론’도 소개
열린 사회라는 인식 심어
장비-원고 손질… 2주뒤 시작


군 당국이 천안함 대응조치 중 하나로 발표한 전방부대의 확성기 방송은 ‘6년 공백’에 따른 인력 부족과 장비 노후화로 2주 정도의 준비를 거친 뒤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25일 “국군 심리전단이 인력 충원을 위해 전방작전사령부 보병부대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 산하 심리전단은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회담 합의에 따라 8개 중대 24개 소대가 2개 중대 7개 소대로 축소 편성됐다.

스피커 등 방송장비도 일부 긴급 교체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는 “1996년 도입한 스피커의 상당수가 2004년 이후 6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채 보관되는 바람에 정상 가동은 어렵다는 설명을 군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 북한 병사 마음 흔드는 확성기 방송

국방부 심리전단은 확성기 방송 방침이 발표된 20일 이후 방송 재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역 장교는 물론 예비역 장교를 영입해 방송국의 ‘방송 작가’처럼 확성기 방송의 원고(스크립트)를 준비하고 있다. 심리전단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최근 국방부 청사 도로에 세워져 있던 안내표지판을 없애는 등 ‘보안 유지’에 나섰다.

2004년까지 전방 94개소에서 실시됐던 확성기 방송의 주요 타깃은 휴전선 북쪽 10∼12km 안쪽의 북한군 장병이다. 확성기 방송은 ‘북한 병사가 모르는 북한 내부 사정’은 물론 국내 가요와 뉴스도 들려준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한국팀의 경기를 중계해 틀어준 적도 있다.

뉴스를 보낼 때는 한국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나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소식도 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전단에서 근무했던 한 예비역 장교는 통화에서 “이런 내용은 한국 사회와 정부가 비판에 열려 있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줬다”며 “북한 병사로서는 정부 비판 보도가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판단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2004년 남북 간 방송 중단 합의 이전까지 남측에 정부와 민간 차원의 남북회담을 개최하는 전제조건으로 ‘심리전 중단’을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고 한 군 관계자는 전했다.

군 당국은 확성기 이외에 초대형 전광판을 설치해 북쪽을 향해 선전 문구를 보여주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2004년 이전에는 가로 110m, 세로 17m 크기의 대형 전광판 11개가 설치됐고 ‘한국 월드컵 4강 진출’ 등을 스크린에 올렸다.

아울러 군 당국은 다수의 이동형 방송중계 장비를 갖추고 대북 라디오방송도 추진할 계획이다. ○ 북한의 확성기 대응

북한도 남측의 확성기 방송에 대응해 방송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 군은 과거 조선중앙방송이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대남방송을 틀기도 했지만 우리 군 병사를 겨냥한 ‘반미(反美) 선동’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언제부턴가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은 방송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미국의 소리’ 뉴스 등 北 핵심계층 파고들어

한미일 10여개 채널 송출
北체제 회의론 확산시켜


폐쇄된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수단으로서의 대북방송의 위력은 대북 전단(傳單·알림쪽지) 못지않다. 대북방송은 살포 범위가 제한적인 전단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반면 라디오가 있어야 들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대북방송은 한국 미국 일본 등 3개국에서 송출되며 10여 개에 이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미국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소리방송(VOA)’과 미국 의회의 지원을 받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있다. 일본에는 내각 직속의 납치문제대책본부가 지원하는 방송인 ‘일본의 바람’이 있다.

국내에는 공영방송인 KBS가 진행하는 ‘한민족방송’이나 대북선교방송인 ‘극동방송’ 등이 있다. 또 탈북자들과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이 송출하는 ‘자유북한방송’ ‘자유조선방송’ ‘열린북한방송’도 있다.

대북방송은 주로 단파(SW)로 송출되지만 VOA나 RFA처럼 단파와 중파(AM, MW)를 함께 보내는 방송도 있다. 단파는 방송을 멀리까지 전달할 수 있지만 음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중파는 원거리 송출이 어려운 대신 음질이 깨끗하다.

북한은 대북방송에 대해 수시로 비난을 퍼부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방해전파를 쏘는 등 북한 내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특히 북한 내 영향력이 큰 VOA와 RFA, 그리고 탈북자 대북 방송의 시초인 자유북한방송이 북한의 집중적인 비난 대상이 됐다. VOA와 RFA가 주로 남북 관련 뉴스 중심의 방송이라면 탈북자 단체가 송출하는 방송은 북한 주민을 각성시키고 깨우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대북 전단도 그러하지만 대북방송 역시 북한 내 청취인구나 수신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대북방송을 몰래 청취하는 주민이 해마다 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핵심 계층 속으로 방송이 파고들고 있다고 한다.

대북방송들이 북한처럼 강력한 통제 시스템 속에서 눈에 띄는 내부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체제에 대한 주민의 충성도를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 정권에 타격이 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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