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李도 놀란 국민 투표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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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연초부터 가능성 검토…친이 “논의하기 이른데…” 곤혹

지난달 28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이명박 대통령 중대 결단’ 발언으로 촉발된 세종시 국민투표론으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당론 수렴 및 국회 통과가 불가능할 경우엔 국민투표가 최후의 카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청와대가 처음으로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국민투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가 국민투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중대결단을 언급했던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1일 통화에서 “국민투표라는 말을 직접 꺼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국민투표의 법적 요건과 득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의견 등을 면밀히 따져봤다는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돼 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월부터 한나라당 주류 의원 3, 4명씩을 그룹으로 만나며 국민투표 가능성에 대한 여론을 수렴했다고 복수의 한나라당 의원이 전했다. 모임에 참석한 한 초선 의원은 “청와대가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세종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여론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국민투표로 해석될 수 있는 ‘중대결단’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설 이후에도 세종시 수정안 지지 여론이 원안보다 크게 높아지지 않고 있는 데다 한나라당의 세종시 의원총회에서도 합의점이 나오지 않은 상황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친이(친이명박)계는 물론이고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도 국민투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또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쪽도 지금은 국민투표론을 꺼낼 시기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국민투표는 그 자체가 정국을 크게 뒤흔들고 설사 관철된다 해도 결과를 속단하기 어려운 메가톤급 사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핵심 참모는 “국민투표는 위험부담이 큰 카드”라며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여권서도 신중론… 靑, 의견조율 실패인가 여론 떠보기인가
당론 돌파구 못찾아… 위헌논란-후폭풍 우려도
靑관계자 “국민투표라는 말 직접 꺼낸적 없어”


친이계 정두언 의원은 “국민투표는 국회 처리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됐을 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라며 “현재 여당이 중진협의체를 구성해 수정안에 대해 논의하려는 상황에서 국민투표가 거론되는 것은 시점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를 공론화하는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 주류 의원들 간에 사전 조율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청와대와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 전혀 협의가 없었고 (세종시 수정을 위한) 시나리오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당의 정상적인 논의 절차와는 무관하다. 중진협의체는 국민투표 논란과 관계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 내부에는 국민투표 자체에 대한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투표로 세종시 문제를 매듭짓는 과정에서 위헌 논란이 일 여지가 크고, 국민투표가 자칫 부결될 경우엔 정권에 엄청난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류 의원들 가운데서도 투표를 실시할 경우 ‘정부가 무리하게 수정을 추진한다’는 역풍으로 부결될 개연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국민투표 문제가 당장 6월 지방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의해 지방선거와 동시에 처리하려고 할 경우 이른바 ‘반(反)이명박 연대’가 공고해져 격전지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대의정치가 실종된 상태 아니냐. 중진협의체에서 잘 논의되길 바라지만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은 낮다”라며 장차 국민투표 카드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분명한 것은 목검이 아닌 진검 승부를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친박계는 “세종시 토론이 국민투표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라며 강력히 성토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로 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국회에서 법으로 만들어야 할 일을 국민투표로 고친다는 것은 입법부 기능을 무시하겠다는 것이고 삼권분립 체계를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정복 의원도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나라가 거덜 날 수도 있는 중차대한 판단 오류”라며 “국민투표를 하면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으로 대한민국은 정치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고 치유할 수 없는 지역 갈등만 남게 돼 중대한 국가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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