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감정적 말싸움’ 차단하면서 “결론나면 따라가야” 일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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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당 중심 결론내야”
靑참모진엔 “일절 거론말라”
‘정쟁’ 비화 경고 메시지
“만나봐야 견해차만 드러날것”
‘MB-朴 회동’ 양진영 시큰둥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론’ 발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집안 내 강도론’ 발언, 박 전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공개 사과 요구 등으로 증폭되던 여권 내 갈등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이 대통령이 12일 한나라당 지도부 및 신임 당직자와의 조찬간담회에서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고 박 전 대표도 침묵 모드로 전환했다.

그러나 양측의 불신과 갈등이 해소됐다고 보는 이들보다는 ‘한시적 정전(停戰)’에 들어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장 세종시 문제 등에 있어서 양측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 이 대통령 강도론 중단 왜?

이 대통령은 11일 하루 종일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및 만찬 일정을 소화한 뒤 강도론 논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는 감정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참모진에게도 앞으로 이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말라고 엄명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싸움의 한 당사자가 된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여당 내 지도자와 정책 공방이 아닌 말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은 어떤 이유에서건 국민들이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12일 간담회에서 “서로 더는 말꼬리를 잡지 말고,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덮고 나가야겠다고 어젯밤에 생각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내가 지금 지도자 자질을 언급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9일 청주에서 자신이 한 발언이) 전달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화합을 당부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이 대통령이 어른으로서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사과 요구에 “그 말이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는 대로 처리하면 될 것 아니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박 전 대표는 이날 이 대통령의 제안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쟁을 중단하자는 이 대통령의 제안 자체를 거부할 명분은 없기 때문이다.

○ 강도론 봉합, 세종시 충돌?

강도론 공방은 이로써 수습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세종시 문제는 여전히 인화성이 높은 현재진행형의 이슈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조찬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당이 중심이 돼서 결론을 내렸으면 한다”며 민주적 방법을 통한 당론 도출을 당부했다. 그는 “개인 생각이 달라도 당에서 정해지면 따라가야 민주주의이고, 마음이 안 맞아도 토론을 해서 결론이 나면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원론적 언급이긴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박 전 대표와 친박(친박근혜)계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동안 친이(친이명박)계는 의원총회 등을 통한 당론 변경을 주장해 왔고, 박 전 대표 측은 당론 변경을 위한 토론 자체를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전날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는데 어떻게 대화가 되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3월 세종시 수정안이 법안으로 발의돼 국회로 공이 넘어올 경우 양측 간의 갈등이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각에선 결국 분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 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친이계 주류 측이 끝장토론을 통해 당론을 확정하겠다고 한 만큼 토론 자체를 거부하는 친박계로서는 최악의 경우 분당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당론을 따르지 않는 것은 해당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무기명으로 당론을 확정하는 투표를 할 경우 한나라당 전체 의원 169명의 3분의 2인 113명의 찬성으로 당론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 친이 측의 계산이다. 그러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당을 깨고 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많다.

○ MB-박근혜 회동 가능할까

강도론 논란 종식 제의를 계기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12일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나는 게 어떻겠느냐”는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의 제안에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원론적 수준의 답변이었지만 여권 내에서는 강도론으로 촉발된 청와대와 박 전 대표 측의 갈등, 세종시 문제 등을 풀기 위해선 두 사람의 회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양측은 모두 현 시점에서 만나는 것에 대해 시큰둥한 분위기다. 세종시 문제에 있어 양측의 태도가 워낙 확고한 데다 두 사람이 만나 견해차만 확인할 경우 당내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공식적인 제안은 아직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기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도 “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회동에 대해) 말씀하신 것도 아닌데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소극적인 분위기다. 한나라당 조해진 대변인이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브리핑을 했다가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친 뒤 “정 대표의 요청에 따른 원론적 답변이었다”고 정정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추진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親朴 “오해로 빚어진 일… 부담 덜었다”
홍사덕 “일종의 접촉사고깵 여당 화합하는 모습 보여야”▼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여권 갈등을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한 발언에 대해 친박(친박근혜)계는 대체로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번 논란이 봉합돼야 한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3월 초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친이(친이명박)계와의 논리 공방이 불가피하겠지만 미리부터 감정싸움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기류로 읽힌다.

친박계 최다선인 6선의 홍사덕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느냐. 설을 앞두고 여당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이번 충돌을 “세종시 법안과는 관련 없는 일종의 접촉사고”라고 해석했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도 “세종시 문제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그에 따른 오해로 빚어진 일인 만큼 이런 방식으로 끝내는 것이 옳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이렇게 번질 일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도 사견임을 전제로 “우리도 이 문제를 확대시킬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성헌 의원은 “명절 앞에 여당 내부에서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을 국민께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통령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한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1일 오후 6시경 측근인 진영 의원의 부친상 빈소에 혼자 조문을 다녀갔다. 정치권의 시선이 온통 박 전 대표에게 쏠려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신 구상찬 의원 등은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 청와대와 여당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호영 특임장관 등과 담소를 나눴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親李 “덮는게 옳지만 시비는 가려야”
홍준표 “박 前대표 과한 발언한 것 해명하는 게 옳아”▼

친이(친이명박)계는 당내 싸움을 마무리하자는 이명박 대통령 발언을 지지하면서도 박 전 대표의 해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않았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 말씀은 대승적 차원에서 당이 단합해 달라는 의미 아니겠느냐”며 “계파와 상관없이 당 전체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해 함께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은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갈등을 마무리하자’고 했으니 더는 이 문제로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억울한 측면은 있다. 이번 갈등의 원인을 박 전 대표가 제공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이 직계인 정태근 의원은 “대통령께서 적절한 시점에 자제를 당부한 것”이라면서도 “박 전 대표가 본의가 아니었더라도 헌법기관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면 적절히 해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문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처리하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이날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기 전에 MBC 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대표가 다소 과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선 해명하는 게 옳다”며 “박 전 대표 측이 1991년 ‘김영삼과 노태우의 충돌’ 식으로 몰고 가 정권을 잡자고 하면 오판이 될 수도 있다. 그때는 다른 뿌리끼리의 대결이었는데 지금은 같은 뿌리다. 같은 뿌리끼리 충돌하면 박 전 대표 측이 불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실상 박 전 대표 측의 많은 분들은 공천으로 엮어진 소위 친박집단이지 정치적 고락을 같이하고 생사를 같이하고 그런 관계는 아니다”며 “대통령과 충돌로 차기 정권을 창출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비극을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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