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이어 ‘강도론’ 공방… MB - 朴 냉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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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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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람이 강도 돌변땐…” 朴, MB발언 하루만에 반박
목이 멘 듯 말 잇지 못하기도

靑 “특정인 겨냥한것 아니다”… 친박도 “확대해석해선 안돼”
갈등 봉합은 쉽지 않을듯

세종시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엔 ‘강도론’으로 부딪쳤다. 이 대통령이 9일 충북도청을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기에 앞서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춘다”고 말한 데 대해 박 전 대표가 10일 이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 박근혜 “집안에 한 사람이 강도로 돌변하면…”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15분경 국회 본회의 참석 전에 기자들이 이 대통령의 ‘강도론’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백번 천번 맞는 말씀이지요. 그렇지만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강도로 돌변하면 그땐 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이 대통령을 ‘돌변한 강도’에 비유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또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전날 충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저는 솔직히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고 지원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대통령의 발언은) 당연한 일반론이지요. (하지만)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 아니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세종시와 관련해 일어나는 일에 대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는 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멘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일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면서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충북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언급한 이른바 ‘강도론’에 반박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일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면서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충북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언급한 이른바 ‘강도론’에 반박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 청와대 “박 전 대표 겨냥한 게 아니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보고받고 별다른 언급 없이 “허허” 하고 웃었다고 한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 대통령이 말한 ‘강도 비유’는 대선 경선 때부터 수도 없이 말한 것으로 박 전 대표를 겨냥했다는 해석은 말이 안 된다”며 “이 대통령은 경선 때도 누굴 겨냥하거나 공격한 적이 없다. 또 지금은 누구랑 경쟁할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이날 오전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나오기 전에 브리핑을 통해 “(강도론은) 아직 세계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았고 유럽발 금융위기가 어디까지 진전될지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서 우리 내부가 갈등이나 정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일 잘하는 사람을 밀겠다’는 이 대통령 발언을 ‘후계구도’와 연관시킨 데 대해선 “여야를 떠나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장에게는 정부가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발언 취지를 왜곡 전달한) 일부 언론의 보도도 문제지만 그걸 갖고 친박계가 결기를 보인 것도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 친박계, “특정인 겨냥한 게 아니다”

청와대의 해명과 전날 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 배석한 송광호 최고위원의 설명을 들은 친박(친박근혜)계는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이날 “(박 전 대표는) 일반론적인 얘기를 한 것뿐”이라며 “본래 취지와 달리 확대해석하거나 심지어 특정 인물을 지목한다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친박계인 송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바로 옆에서 들었는데 대통령은 정우택 충북도지사의 설명을 들으며 ‘자치단체장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냄새가 나는데 일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게 내 생각이다’라고 했는데 일부 신문에서 앞뒤 자르고 보도를 했다”고 말했다. 이후 박 전 대표는 본회의장에서 송 최고위원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해들은 뒤 “아, 그래요”라고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갈등 커질 듯

정치권에선 ‘강도론’ 발언의 진의와는 무관하게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갈등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양측이 어느 정도 불통(不通)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은 “이 대통령이 대권과 관련해 어떤 방식으로든 견제에 나섰다는 판단이 들면 박 전 대표도 참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다만 이 대통령이 후계구도에 관여할 의도가 있더라도 시기적으로 지금은 이르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권의 판단일 것”이라고 했다. 반면 친이계의 핵심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대통령 발언의 진의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대통령을 정조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러면서 서로 정치와 당을 함께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으로 당장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갈라설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강도론 공방은 세종시 해법에 상당한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여전히 박 전 대표를 만날 수 있다는 견해다. 하지만 만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양측이 만난 뒤 국민에게 무슨 선물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상황에선 더 어려워진 게 아니냐”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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