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 야도 중도노선 경쟁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학계 10명에게 물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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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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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자 “소비자 극단선택 회피”
심리학자 “현대인 ‘나=평균’ 인식”

“우리 역사에서 ‘중도’를 내세운 정체세력이 이처럼 정치무대의 주류가 된 적은 없었다.”(고려대 한국사학과 조광 교수)

‘중도’의 물결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중도 실용’의 깃발을 내건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3년차를 맞아 지지율 50% 선을 돌파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우향우’라는 당내 일부 비판 속에서도 ‘뉴 민주당플랜’을 발표하고 ‘생활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여야 모두 중도 성향의 중원지대 표심(票心)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정치권에서는 “정치는 종합예술”이라고 말한다. 정치 안에는 경제 경영 심리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의 이론이 녹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권 외 학계에서는 이러한 ‘중도’ 바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경영 경제 사회 심리 역사학자들에게 ‘중도의 매력’에 대해 물어봤다.

○ 역사학자의 탕평論
효과 입증된 조선 탕평책…정치권서 적극 수용한 것

○ 사회학자의 탈냉전論
유권자들 이념경쟁에 식상… 실생활에 대한 관심 커져

○ 경제학자 호텔링論
경쟁 피해 양끝에서 장사하다고객 더 잡으려 점점 가운데로

○ 경영학-‘매스 마켓’과 ‘타협 효과’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1일 정치권의 ‘중도’ 경쟁을 ‘매스 마켓(Mass Market·대중 시장)’ 이론으로 설명하면서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기업들은 특정 고객층만을 상대로 물건을 팔 경우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국 매스 마켓을 잡으려 시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 시장을 예로 들었다. “‘현대’라는 저가 브랜드는 디자인 혁신을 통해, BMW라는 고가 브랜드는 중산층을 겨냥한 ‘3’ 시리즈를 통해 각각 ‘매스 마켓’으로 진출해 성공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회사도 ‘매스 마켓’을 외면하고 ‘우파’, ‘좌파’라는 특정 고객(유권자)에게만 팔 수 있는 상품(정책)에 ‘올인’하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이동진 교수는 ‘타협효과(Compromise Effect)’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회피하고 무난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2만, 3만, 4만, 5만 원대의 세트메뉴가 있을 경우 대개 3만, 4만 원대를 고르는 이유는 5만 원대는 가격이 비싸서 손해 보는 느낌이고, 2만 원대는 품질을 의심하기 때문”이라며 “특정 제품(정치세력)에 대한 확실한 선호도가 없을수록 무난한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 경제학-중간지대가 판매의 최적지



한림대 경제학과 김인규 교수는 미국의 경제학자 해럴드 호텔링이 제시한 ‘호텔링 이론’이라는 게임 이론을 들었다. 김 교수는 “해변의 아이스크림 가게들은 처음에 경쟁을 피하기 위해 양 극단에서 장사를 시작하지만 더 많은 고객층을 잡기 위해 점차 가운데 지점으로 오게 된다”며 “특히 올해처럼 큰 선거를 앞둘 경우 정치권은 더 많은 유권자 확보를 위해 ‘호텔링 이론’처럼 치열한 중도권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중도 실용 경쟁이 이상적인 모델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 김영세 교수는 ‘호텔링 이론’을 인정하면서도 정치권의 중도 경쟁 심화가 자칫 포퓰리즘으로 치달을 수 있는 ‘컬리 효과(Curley Effect)’를 우려했다. 20세기 초 미국 보스턴의 시장이었던 제임스 컬리가 중도층과 서민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병원 공원 등 사회 시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재정을 망가뜨렸던 사례에서 나온 용어다. 김 교수는 “자칫 서민 계층의 표심을 의식한 ‘퍼주기’ 정책 경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인규 교수도 “원칙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주창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처럼 여야가 각자 비교 우위를 가진 분야의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선거를 두고 싸우는 여야 관계에서 ‘비교우위론’은 이상론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 심리학-자신의 기준을 일반화


전남대 심리학과 박태진 교수는 “‘나=평균’이라는 현대인의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대중이 스스로를 중도라 칭하는 까닭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기준을 일반화하려는 경향과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려는 심리 때문”이라며 “이념에 대한 선택뿐 아니라 소득조사에서도 스스로를 상류층이나 서민층보다는 중산층이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대중은 정치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과 불신이 합쳐져 특정 정파와 자신을 연결시키기를 꺼린다”고 설명했다.

○ 역사학-‘영·정조 시대’에의 향수



고려대 조광 교수는 각 당파가 ‘실용’보다는 ‘선명성’을 경쟁하던 조선시대와 비교하며 “근현대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전근대적 시대에는 정치 세력이 이념적 ‘선명성’을 경쟁하며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려 했지만 이는 사회가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근현대를 지나며 점차 사회의 다원성이 강조되자 정치권은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중도’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명예교수는 “조선의 르네상스시대인 영·정조 시대에 추구했던 ‘탕평’ 정치가 당파와 이념을 넘어 소민(小民·지금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자는 것인데 요즘 정치권이 내세우는 중도 실용과 맥이 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때 성공했던 선례가 우리 정치 세력들에게 중도 실용 노선에 대한 미련을 갖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회학-탈냉전과 개혁피로증의 결합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냉전이 끝난 후 이념 경쟁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생활에 실익이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며 ‘포스트 냉전’ 현상으로 분석했다. 그는 “영국 노동당도 사회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제3의 길’을 표방해 보수당으로부터 1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듯이 각 정치세력이 유권자들이 식상해하는 좌우 이념보다는 중도 정책으로 선택받으려 하는 흐름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개혁피로증’을 거론했다. 김 교수는 “참여정부의 주택 정책처럼 실패한 개혁정책들이 일반 서민으로 하여금 개혁에 피로감을 느끼게 했고 이는 ‘중도’로의 이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김유태 인턴기자 서울대 국문과 4학년

김연상 인턴기자 성균관대 국문과 4학년

조정희 인턴기자 연세대 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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