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수주 52일 드라마
지난달 6일 사실상 탈락 통보
MB 전화에도 “할말 뭐냐” 싸늘
그 다음주에 또 전화 설득
18일 UAE “대통령 오시라”
MB “수주는 천운이자 국운”
한국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사업 수주는 52일간의 대역전 드라마였다.
28일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동안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던 역전극의 시작은 지난달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UAE를 방문하고 온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UAE로부터 사실상 수주 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프랑스로 낙찰될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대통령은 유 장관의 보고를 들은 뒤 “UAE에 전화 연결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입찰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자에게 “우리는 향후 30년, 50년의 긴 시간을 보고 UAE와 형제국가의 관계를 맺으면서 진심으로 협력할 자세가 돼 있다.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그리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첫마디는 “무슨 다른 할 말이 있느냐”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그 다음 주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한국이 진정성을 갖고 UAE와 함께하고자 하는 열성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다. 평화적인 원전단지를 만들어 세계에 모범을 보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분야별 전문가들을 보내 달라. 입찰 결과 발표를 5주 정도 미루겠다”고 했다. 천금같은 시간을 번 셈이다.
이 대통령은 즉시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을 파견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특사단이 2, 3일 만에 UAE에 당도하자 그쪽에서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그쪽에서 원하면 입찰가를 10% 낮추라”는 등 제안서 내용까지 일일이 챙겼다고 한다.
이후 한국 쪽으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달 15일 “숙고 끝에 한국과 원전사업을 하기로 잠정 결정했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 대통령은 프랑스의 막판 로비가 워낙 치열해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다 18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사실상 ‘끝내기 낭보’를 들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로부터 “UAE에 오시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이 대통령이 다음 날 귀국길 특별기 내에서 열린 68번째 생일파티에서 평소보다 막걸리를 많이 마신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99% 성사됐어도 방심하면 안 된다”며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했다. 이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나서도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때그때의 이익을 따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 간 관계는 생각과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길게 보고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무함마드 왕세자도 일단 마음을 열자 극진한 대우로 이 대통령을 배려했다. 특히 이 대통령에게 “한국이 원전을 수주하게 된 것은 신의 뜻인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28일 라디오 연설에서 이번 원전 수주를 “천운이자 국운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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