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후보자 “獨 정부부처 본-베를린에 분산돼 혼란-비효율”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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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선서를 하는 모습. 정 후보자는 세종시 문제가 나오자 소신이라며 원안 수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자신 있게 답변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병역 기피 의혹과 인터넷서점 ‘예스24’ 고문 겸직 등 신상에 관련된 의혹을 거듭 추궁하자 정 후보자의 표정이 차츰 굳어지고 있다. 장시간에 걸쳐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 후보자는 안경을 매만지거나 답변에 앞서 입을 꽉 다문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가 하면 물을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는 등 초조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김경제 기자·연합뉴스
21일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선서를 하는 모습. 정 후보자는 세종시 문제가 나오자 소신이라며 원안 수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자신 있게 답변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병역 기피 의혹과 인터넷서점 ‘예스24’ 고문 겸직 등 신상에 관련된 의혹을 거듭 추궁하자 정 후보자의 표정이 차츰 굳어지고 있다. 장시간에 걸쳐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 후보자는 안경을 매만지거나 답변에 앞서 입을 꽉 다문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가 하면 물을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는 등 초조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김경제 기자·연합뉴스
■ 여야 세종시 격돌

○ 與 “길거리 정부 우려”
“서울-세종시로 부처 쪼개면
공무원 왔다갔다 비용 엄청”
鄭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野 “以忠制忠”
“충청출신으로 수정 총대 메
배신자 꼬리표 평생 달 것”
鄭 “발언 취소-사과용의 없다”

21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사실상 ‘세종시 청문회’였다. 세종시 사업 방향을 놓고 여야는 치열한 기 싸움을 벌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 후보자를 상대로 현행 세종시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정 후보자에게 “세종시 사업을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라”고 압박했다. 정 후보자는 야당 의원들의 거센 공세에도 “기존 세종시 사업은 비효율적”이라는 평소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이충제충(以忠制忠·충청도 출신 정 후보자로 충청권을 제압한다는 뜻)’ ‘길거리 정부’ 등 갖가지 조어(造語)도 등장했다.

○ ‘세종시 국가안보 위협’ 공방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이날 세종시로 옮겨가기로 돼 있는 총리실이 입주할 건물의 건설 현장 사진을 꺼내들었다. 정 의원은 “총리는 세종시에 있고 대통령이 서울에 있는 것은 인간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놓는 것과 다름없다”며 “특히 위기 때 심각한 문제이며 국가이기를 포기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 후보자에게 “지금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정·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이 이뤄진 상황에서 대통령은 서울에 있고 부통령이나 총리가 세종시에 있는 경우를 생각해 봤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정 후보자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자 정 의원은 다시 “미국에서도 대통령과 부통령이 백악관에 같이 근무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반면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은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대통령이 같은 헬기에 타고 가는 것 봤느냐. 왜 (그들이) 같은 헬기에 안 타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박 의원은 이어 “(미국의) 9·11테러와 같은 상황에서는 (정부 부처의) 분산이 오히려 안보에 효율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자는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고 반박했다.

○ ‘유령 도시’ ‘길거리 정부’ 우려

정 후보자는 세종시의 비효율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행정부처가 본과 베를린으로 나눠진 독일이 굉장한 혼란과 비효율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차명진 의원이 다시 “세종시의 자족성이 없어 ‘유령도시’가 될 우려가 있고, (공무원들이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길거리 정부’ 탄생이 우려된다는 뜻 같은데 안보 공백에 대해서는 생각해봤느냐”고 묻자 정 후보자는 “그것도 동의한다”고 답했다. 차 의원이 “세종시가 완성되는 2030년 이전에 통일이 돼 국가 기관이 예컨대 여의도 광화문 과천 세종시 개성의 5곳으로 흩어진다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고 주장하자 정 후보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세종시 효율성 문제는 충분히 논의돼서 결론이 났으며 세종시는 법과 예산이 집행 중인 사업”이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이 “효율성 운운하는 것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냐. (세종시 관련 발언에 대해) 취소하고 사과할 용의가 있느냐”고 따졌으나 정 후보자는 “그럴 용의는 없다”고 버텼다.

박상돈 의원은 “중앙부처가 떨어져 있어 불편하다는 이유로 효율이 없어서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은 난센스”라며 “교통·통신의 발달로 영상회의 등으로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 사소한 불편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정 후보자와 야당 의원 사이에 격론이 계속되자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은 정 후보자에게 “후보자의 ‘(세종시) 비효율’ 발언은 행정기관 이전만이 능사가 아니고 자족도시를 만들기 위해 전력해야 한다는 뜻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정 후보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 ‘이충제충’ ‘콩을 삶는 콩대’

특히 충청권 의원들은 “이 지역(충남 공주) 출신의 정 후보자가 세종시 원안 변경의 악역이라는 총대를 메고 고향을 배신했다”고 질타했다.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이충제충’이라는 말을 들어봤느냐”며 “총리가 되기 위해 고향을 버렸다는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닐 것이냐”고 압박했다. 박상돈 의원도 “중국 고사의 자두연두(煮豆燃豆·콩대가 콩을 삶는다는 뜻)의 경우가 생각난다”고 가세했다. 반면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은 “충청 출신 총리를 벗어나 대한민국 총리로 국정을 총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 후보자도 “고향에 있는 세종시를 좋은 도시로 만들려는 생각뿐이다.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해명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학자와 총리는 다르다”
4대강 -한미FTA 등 시각 바꿔
“감세땐 빈부격차 커질수도”
서면답변과 달리 비판적 태도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21일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경제학자로서 보여줬던 비판적인 시각 대신 현 정부의 정책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 후보자는 이날 “대학교수로서 건설적인 비판인이 되고 싶었다”며 ‘학자 정운찬’과 ‘총리 정운찬’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정 후보자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서면답변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홍수피해 대비와 수질 개선을 위해 추진 필요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의 한 강연에서 청와대가 4대강 정비사업을 ‘한국판 뉴딜 정책’이라고 밝힌 데 대해 “한국에서 뉴딜 한다고 하는데 잠수돼 있던 대운하가 나올까 걱정이다”라고 말했었다.

그동안 비판적이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한발 물러섰다. 정 후보자는 지난해 6월 한 강연에서 “어떤 사람은 ‘경제원론’ 앞부분만 보고 FTA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데 잘못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서는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감세 정책과 관련해선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정 후보자는 당초 서면답변에서 “현 정부는 고소득층 및 대기업에 대한 과세혜택을 축소하고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고 있어 부자 감세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감세에 비판적이던 과거 견해와는 다른 답변이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는 “감세를 하면 아무래도 빈부 격차가 커질 수 있다” “아직 감세에 비판적인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정 후보자는 그동안 “시장 질서를 왜곡시켜 경제력 집중과 금융위기 가능성을 키운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서면답변에서는 “은행이 (산업자본의) 사금고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면서도 정부 정책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6월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경기부양에만 온 신경을 쓴 나머지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서면답변에서는 “대통령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이날 “(나는) 일생을 중도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실사구시와 중도실용에 맞는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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