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기술 터키 이전, 수출이냐 유출이냐

  • 입력 2009년 9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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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정권 말기 회의록 입수
방위사업청-국방과학硏
핵심기술 터키 소유권 인정
‘3국유출’ 위험성 지적에도
“기술격차 커져 문제없을 것”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국내 기술로 개발된 차세대전차 ‘흑표’의 핵심기술이 제3국에 유출될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도 터키에 기술이전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노무현 정권 말기인 지난해 1월 방위사업청에서 열린 제22회 정책기획분과위원회 회의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이 회의에는 방위사업청 차장과 국방부 전력정책관, 합참 전력기획부장, ADD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 “‘A급 기술’ 이전 대상에 포함됐지만 별 문제 없어”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방위사업청 등은 터키에 이전할 흑표의 A급 핵심기술이 엄격한 수출 제한 품목임에도 터키가 한국의 전차 제작기술을 뒤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기술 수출을 강행했다.

한 참석자는 “국방기술 수출통제 목록에 포함된 ‘A급 기술’이 이전대상에 포함됐지만 터키가 전차를 생산, 배치하는 2017년 이후엔 한국이 더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게 돼 터키에 ‘기술역습’을 당할 기회나 강도가 미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 ADD 관계자는 다른 참석자들이 핵심기술의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자 “ADD와 방위사업청 관련 기관들이 검토한 결과 A급 기술이지만 이전돼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라며 “핵심 기술이 넘어가는 것 아니냐, 제3국으로 너무 유포되는 것 아니냐는 많은 우려에 대해 충분히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대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 참석자는 북한을 비롯한 적성국에 흑표의 핵심기술이 유출될 위험성도 제기했다. 한 참석자는 “(핵심기술의) 소유권을 (터키에) 너무 넘겼다. 터키가 소유권을 갖게 된 핵심기술들을 제3국에 판매하더라도 한국이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터키가 제3국에 기술 수출을 하기 전에는 한국에 사전 통보하고 한국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한다는 규정을 계약서에 포함시키기로 결론을 내렸다.

○ 터키가 이전기술로 개발한 전차 관련 기술의 제3국 수출은 제동 불가

당시 회의에선 터키가 한국에서 이전받은 기술로 독자 개발한 전차의 장갑과 주포 관련 지적재산권은 터키 방위산업청의 소유임을 분명히 했다.

한 참석자는 “터키 정부의 입장은 자국 예산을 들여 해외기술 지원업체의 도움으로 개발한 전차의 관련 기술은 터키 방산청에 속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ADD가 작성한 검토 결과 문건에 ‘한국이 터키에 상응한 대가를 받고 이전한 기술로 발생한 관련 기술은 터키 정부의 소유이며, 따라서 터키의 (기술)생산, 사용, 판매에 대한 제한을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돼 있다”고 소개했다.

방위사업청은 흑표 핵심기술의 유출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터키에 한국 정부의 별도 승인이 필요하다는 방침을 서한 등으로 명확히 통보했다고 밝혔지만, 터키가 계약 규정을 들어 얼마든지 제3국에 유출해도 이를 막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정부 사전 승인 피하기 위해 예외 조항 적용

이 회의에서는 흑표의 A급 기술 터키 이전 추진과정에서 정부의 사전승인을 피하기 위해 예외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방위사업관리규정 제658조 제3항은 ‘대한민국에서 수출된 기술자료 용역과 기술자료 및 용역에 의해 제조되거나 생산된 제품은 정부의 사전 서면 승인 없이 제3국에 수출 판매 양도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4항은 ‘방산물자 등의 수출 진흥을 위해 필요한 경우 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쳐 청장의 승인을 획득한 후 그 내용의 일부를 수정해 계약서에 반영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있다.

실제로 한 참석자는 회의에서 “(흑표 기술의) 터키 수출을 위한 정책적 검토 결과 차기전차의 최초 수출이라는 상징성과 전통적인 우방국인 터키와의 관계 및 터키 방산시장에서 향후 수출 진흥을 위해 (정부의) 사전 승인 규정을 적용하기보다 예외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한-터키 간 전차 기술수출 계약에 대부분 반영

지난해 7월 현대로템과 터키의 오토카가 체결한 기술수출 계약에는 이 같은 회의 의결 내용이 대부분 담겼다. 우선 핵심기술을 포함해 모든 기술의 터키 소유권을 인정했다. 계약 32조에 따르면 기술지원을 통해 개발된 터키 고유전차의 지적산업 재산권은 터키 방산청이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발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종류의 제품, 소프트웨어, 기술 자료 및 이와 관련된 정보에 관한 모든 지적 산업재산권도 터키 방산청이 갖도록 했다. 또 터키 방산청이 요청하면 핵심기술인 파워팩, 능동형 현수장치(ISU) 같은 주요 서브시스템의 기술이전을 실행하고 이에 대한 모든 지적 산업재산권의 소유권도 터키 방산청에 귀속되도록 했다.

이 계약은 4억 달러 규모로 200여 대를 생산하는 터키고유전차 개발사업에 2015년 4월까지 개발기술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흑표의 기술수출 계약 성사로 2008년도 한국의 방산 수출액이 사상 처음 10억 달러를 넘었고, 방위사업청은 이를 크게 홍보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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