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댐 차올라 긴급 방류… 앞으로 사전통보” 北의 이례적인 답장 - 당일 회신 DJ때도 드문 일… 댐수위 높아진 이유는 함구, 발송인도 ‘관계기관’ 어물쩍 北내부에 무슨 일이? - 일부세력 돌출적 도발행위… 지도부가 수습 나선 모양새, 전형적 ‘치고 빠지기’일 수도 북한이 임진강 무단 방류 하루 만인 7일 남측의 항의 통지문을 받은 지 불과 6시간 만에 답장을 보낸 것은 이례적으로 신속한 반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통지문 내용은 믿을 수 없거나 정보가 불충분해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빠른 답장에 알맹이는 없어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경 북한에 전통문을 보낸 뒤 이르면 하루 뒤인 8일에나 답장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좋던 때에도 정부의 전통문에 당일 답장을 한 경우가 드물었고 그동안 단절됐던 판문점 적십자 간 남북전화가 다시 연결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측은 2005년 9월 6일 남측이 임진강 무단 방류에 따른 피해를 따지는 전통문을 보내자 이틀 만에 회신을 보냈다. 따라서 북측이 이번에 신속히 응답한 것은 일단 긍정적이지만 북측의 통지문에는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이번 사건의 핵심인 긴급 방류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북측은 5일부터 6일 새벽 사이에 언제(댐)의 수위가 높아져 긴급히 방류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왜 수위가 높아졌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기상청 등에 따르면 임진강 상류인 북한 황해도 지역에 최근 비가 거의 오지 않아 호우를 이유로 한 북측 주장은 믿기 어렵다. 둘째, 긴급 방류 원인을 추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도 거의 없다. 우선 방류를 한 댐이 명확하지 않다. 북측이 “언제(댐) 수위가 높아져 긴급히 방류했다”고 밝힌 것으로 볼 때 수문이 달린 황강댐으로 추정할 뿐이다. 긴급 방류의 주체도 밝히지 않은 데다 통지문 발송 주체도 ‘북측 관계기관’으로만 돼 있다. 셋째, 북측은 남한의 무고한 국민 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에 대해 일절 사과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경위가 어떻든 북측이 가해자임이 명백한 이상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데 대해 사과를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유감 표명조차 없는 북측의 태도는 묵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 권력 내부의 이상? 치고 빠지기? 북한이 이유나 의도가 분명치 않은 무단 방류에 이어 이례적으로 신속한 해명을 한 것에 대해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 권력 내 정책결정 과정의 이상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운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내부 소통에 문제가 생겨 김 위원장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돌출했고 북한 지도부가 이를 조속히 수습하려 했다는 관측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북-미 및 남북 관계를 동시에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다가 갑자기 대남 수공(水攻)을 감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김정운 추종자 등 일부 세력이 사건을 계획적으로 실행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예상치 못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내부적으로 문제가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술일 수도 있다. 북한이 남한 정부를 자극해 대북 지원 등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건을 일으킨 뒤 남한 여론의 악화를 막기 위해 진화하는 모양새를 갖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서도 북한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등 대북 비난 여론이 커지던 상황이었다. 북한은 2002년 6월 29일에도 제2차 서해교전을 일으킨 뒤 남한 여론이 악화되자 7월 26일 전격적으로 유감을 표명해 국면 전환을 노린 적이 있다. ○ 정부, 앞으로 해결 과제 많아 북측이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약속해 정부로서는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앞으로 만만찮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 당장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남북간 공유 하천의 피해 예방을 제도화하기 위한 남북간 협의를 성사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의도에 따라 끌려 다닌다’는 비난을 피하도록 원칙과 유연성의 묘를 살려야 하는 과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사건 발생 이후 ‘선 진상규명, 후 사과요구’ 원칙을 내세우며 조심스럽게 대응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7일 전통문을 보내면서도 북측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사건의 진상과 원인이 규명된 뒤 북측에 사과 요구를 검토한다는 논리였지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데 대해 분명히 사과를 요구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정부 안팎에서도 제기됐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