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단 오는 날 대남압박 해제… 北, 초스피드 ‘해빙모드’ 왜?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통 큰 양보’ 앞세워 파상적 대화 공세… 정부 “좀 더 두고보자”
실세 조문단 통해 김정일 메시지 전달… 당국자 만날 수도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 석방 이후 대남 유화 메시지를 잇달아 던지며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일방적으로 악화시켜 온 남북관계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려 하고 있다. 북한이 21일 고위급 조문단의 서울 방문에 맞춰 남북 육로통행 제한조치(12·1조치)를 해제한 것도 이 같은 대남 ‘조문정치’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 ‘통 큰 양보’ 내세워 남한 정부 압박

북한은 20일 오후 5시 반경 정부에 통지문을 보내 일방적으로 ‘12·1조치’의 해제를 통보했다. 이후 오후 9시 40분경 판문역과 파주역 사이의 남북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해고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를 다시 열어 남북 당국간 상시 소통 채널을 복원했다고 밝혔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묘향산에서 만나 이번 해제 조치를 포함한 남북 교류협력 5개 항에 합의했다.

통행 제한 조치 해제로 지난해 12월 1일부터 매일 오전과 오후 각각 3차례로 제한됐던 경의선(서해지구) 육로 출입과 1주일에 1차례로 제한됐던 동해선(동해지구) 출입 횟수가 다시 늘어난다. 12·1조치 이전에 경의선 출입은 하루 19차례, 동해선 출입은 2차례 가능했다. 매 통행 시 왕래하던 인원과 차량도 각각 500명, 200대로 회복되며 880명으로 제한됐던 개성공단 내 상시체류증 소지자도 3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북한이 금강산과 개성관광 재개 등 나머지 교류협력 4개항에 대해 남측의 신속한 당국 간 대화 제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조문단 파견에 맞춰 남한 정부에 ‘선물’을 보내 선수를 친 것으로 풀이된다. 남한 내 남남(南南)갈등을 유발하면서 남한 정부를 압박하는 대남 전략전술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들은 21일 서울에 오는 북한 조문단도 남측 당국에 적극적인 대화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조문단은 김정일 위원장의 대남 메시지를 들고 와 당국자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남한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향후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희망을 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최근 방북했던 현 회장과의 오찬에서도 이런 속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 신중 반응

정부 내에서는 북한의 이런 태도 변화에 환영과 우려의 기류가 엇갈리고 있다. 한 당국자는 “정부는 올해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 등을 통해 12·1조치의 해제를 북측에 요구해 왔다”며 “개성공단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이번 조치는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화되는 것이며 통행 제한이 풀렸다고 개성공단의 어려움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중대 조치 해제가 어느 범위, 수준인지 이번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국간 접촉 성사 가능성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한 당국자는 “엄밀히 말해 아직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김대중평화재단 측이 서로 연락해서 내려오는 ‘사설 조문단’ 아니냐. 북한 조문단은 정식으로 우리 정부에 연락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북측이 면담 요청을 할 경우) 상황에 따라 (정부 방침을) 검토하겠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다른 당국자는 “북한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가져오는지가 중요하다”며 “조문단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당국간 만남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한편으론 북한의 태도 변화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남북관계는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그 방식이 중요하다”며 “정부는 교류협력 4개항 등에 대한 당국간 회담 시작 시기를 신중히 결정하고 관광 대가로 현금을 줄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정부를 통하지 않고 유족 측에 조문과 관련한 연락을 한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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