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품 협상 가장 잘해… 교육-의료 등 서비스 분야는 미흡”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 통상전문가 10명 평가

한-EU FTA로 얻는 열매는 한미 FTA와 비슷하거나 더 커

한국산 소형차 관세철폐 시기 5년 뒤로 미룬 점은 아쉬워

“국민 관심 매우 낮아 다양한 의견 수렴됐는지 의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 경제가 거둘 수 있는 과실(果實)은 한미 FTA와 비슷하거나 더 크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10명의 국내 통상전문가를 대상으로 한-EU FTA 협상결과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전문가 10명 중 절반인 5명은 한-EU FTA의 긍정적 효과가 한미 FTA보다 클 것이라고 진단했고 4명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또 한-EU FTA가 교착상태에 빠진 한미 FTA 비준을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를 저지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서비스 등 일부 분야의 협상 결과는 평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미 FTA 때와는 달리 국민적 관심이 저조했던 점과 소형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시기를 더 단축시키지 못한 점 등은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됐다.

한국 공산품 수출 최대 수혜

전문가들은 한국이 협상을 가장 잘한 분야로 공산품(자동차 제외·5점 만점에 평균 4.5점)을 꼽았다. 공산품 분야에서 한미 FTA보다 훨씬 넓은 개방 폭을 이끌어낸 것이 가장 큰 성과라는 것이다. EU는 한국에서 수입하는 전체 공산품의 97%(품목 수 기준)에 매기는 관세를 즉시 폐지하고 3년 안에 99%에 대한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한미 FTA에서는 미국의 한국산 공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 기간 비율이 ‘즉시’ 87.3%, ‘3년 이내’ 91.4%였다.

농축수산물과 자동차 분야는 평균 3.7점과 3.5점으로 ‘보통’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돼지고기나 와인, 유제품 등 농축수산물 분야는 전반적으로 선방했지만 농가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 감점 요인이었다. 자동차 협상은 EU가 한국산 소형차(1500cc 이하)의 수입 관세 철폐시기를 5년 뒤로 미룬 것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교육 의료 등 서비스 분야는 평균 3.4점으로 점수가 가장 낮았다. 이 분야는 오히려 너무 방어를 잘한 점이 불만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환경과 통신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EU 기업의 진출을 허용하고 교육 의료 등 주요 분야는 개방하지 않았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한국이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육 의료 등 서비스 분야의 문호를 점진적으로 열어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진통을 겪었던 관세 환급과 원산지 표시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잘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EU의 집요한 폐지 및 완화 압력을 끝까지 버텨낸 관세 환급은 4점을, 일정 부분 양보한 원산지 기준 문제는 3.5점을 각각 받았다.

축산농가 대책 마련과 FTA 확대는 과제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춘 공산품 개방 폭은 한미 FTA보다 넓히면서도 쌀 고추 양파 쇠고기 돼지고기 등 민감 품목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개방 시기를 대폭 늦췄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줬다. 다만 FTA가 발효돼 유럽산 돼지고기와 유제품 수입량이 늘어날 경우 국내 양돈업계와 낙농업계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피해 농가에 개별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농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인프라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EU FTA 협상의 아쉬운 점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특히 정부의 홍보 부족과 이에 따른 ‘국민적 무관심’을 지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았다. 이종원 수원대 교수(무역학)는 “국민의 관심이 매우 저조해 다양한 의견이 충분히 수렴됐는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도 “높은 경제효과가 기대되는 협정이었는데도 산업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FTA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다양한 국가와 동시다발적 협상을 추진하면서 국내 통상 협상 체계와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홍식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은 대외협상 실무부처와 책임부처가 나뉘어 있고 의회가 사후 비준을 하기 때문에 엇박자가 나는 일이 많다”며 “통상절차법을 정비하고 다양한 국가와의 FTA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FTA 체제의 밑그림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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