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만 있고 ‘정책-전략’은 없어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한나라 원내대표 경선 D-2… 후보3명 “우리가 적임” 목소리 높이지만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이 당 운영 비전이나 철학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계파 간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은 앞으로 1년 동안 국회에서 여당을 이끌어 갈 원내지도부를 선출하는 중요한 선거다. 새 원내지도부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2년차 국정운영 방향과 여당의 정책 기조를 조율하고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막중한 일을 맡는다.

하지만 각 후보는 정책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계파와 지역 안배 문제가 당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당내 의원들조차 “당 쇄신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원내대표 경선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당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안상수 의원과 정의화 의원이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경선은 정상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4·29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위기의식을 느낀 당 지도부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밀어붙이면서 선거 양상이 변질됐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반대로 김무성 카드는 무산됐지만 막판에 친박 성향의 최경환 의원이 정책위의장으로 출마했고 안상수 의원이 “‘보이지 않는 손’이 경선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또 다른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여당 의원들도 원내사령탑 후보자들이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그 대신 주류인 친이 측과 비주류인 친박 측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수도권 후보와 영남권 후보를 어떻게 안배할 것인지가 판세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서 후보들의 국정 철학, 리더십, 원내 운영 전략 등은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며 “정치에서 계파의 이해를 떼어내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번 선거는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쇄신특위에서도 원내대표 경선이 계파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를 못하고 있다. 쇄신특위가 각 계파를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돼 출발부터 ‘한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당내 개혁파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개혁 성향의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의 공동간사인 김성식 의원은 “일부 의원은 ‘투표에서 기권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면서 “후보 토론회 과정에서 ‘일하는 국회’ ‘상임위 중심의 국회’를 만들기 위해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할 수 있도록 의원들의 힘을 모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도 싸늘하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현우 교수는 “한나라당이 재·보선에 참패하고도 위기의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한가롭게 당 내 권력 투쟁에 정신을 쏟고 계파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10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5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또다시 패배할 수 있다는 위험한 징후”라고 경고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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