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법’도 안지키는 의원님들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출구 맞은편 인도의 가로등 사이에 국회의원의 불법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김경제 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출구 맞은편 인도의 가로등 사이에 국회의원의 불법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김경제 기자
국회 주변 불법현수막… ‘금연건물’ 의사당서 버젓이 흡연

현수막 떼내면 되레 항의

구청선 과태료도 안물려

“일정바빠” 교통위반 예사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안팎에서 법을 어긴다는 지적이 많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위법·탈법 현장이 국회 주변에서 곳곳에서 포착됐다.

의원들은 “우리가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라면 사소한 것부터 지켜야 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위반도, 단속도 치외법권=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맞은편에는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을 때가 많다. 가로등 사이에 얼기설기 묶어 놓은 것들이다. 보행자 머리에 현수막이 걸리기도 한다.

‘○○○ 의원실 공청회’처럼 개별 의원실에서 직접 달아 놓은 것도 있고, ‘청년 정치인 교육과정’처럼 정당 명의로 설치한 것도 있다.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서는 정해진 장소가 아닌 곳에 걸어 놓은 광고물은 불법이다. 불법 광고물 단속권을 갖고 있는 영등포구청이 해마다 2, 3차례 국회사무처에 공문을 보내 시정을 요구하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구청 관계자는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많아 우리도 괴롭다”며 “국회 담장 쪽에 광고물 게시판을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국회에서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구청이 국회를 상대로 제재를 가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일주일에 이틀가량 현장에 나가 현수막을 철거한다.

이 관계자는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 따르면 13만 원 정도의 과태료를 물려야 하지만 그분(국회의원)들도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아니냐”며 말끝을 흐렸다.

구청에서 현수막을 떼면 의원 보좌관들이 “왜 철거하느냐”며 거칠게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국회 정문에서 영등포 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정식 광고물 게시대가 있다. 매달 추첨을 통해 구청에서 정하는 양식에 따라 현수막을 붙이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의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외면한다.

▽흡연, 불법주차 등 생활질서 위반=국회 본관은 금연 건물이다. 사무처 직원들이 캠코더까지 들고 다니며 단속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예외다. 의원총회를 하거나 상임위가 길어질 때면 사무실이나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의원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선수(選手)가 높아 국회를 제 집처럼 생각하는 의원들이 많은 편이다.

사무처 측은 “의원들에게 담배를 피우라 말라 할 수 있겠느냐”며 “본인들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무처 흡연단속반은 의원들이 담배 피우는 현장에는 아예 가지도 않는다. 금연 빌딩에서 흡연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3만 원을 물어야 한다.

의원들은 도로교통법도 상습적으로 위반한다. 워낙 일정이 많다 보니 과속, 신호 위반, 버스 전용차로 주행 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2000년 이후 6년간 교통 법규를 78건이나 위반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의원들 차가 워낙 좋다 보니 서울에서 목포까지 3시간 만에 끊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요즘은 내비게이션 덕분에 과속으로 단속되는 사례는 줄었다. 하지만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무인카메라에 찍히는 경우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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