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협상은 양국 모두 부담… 추가협상 가능성 대비해야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4분


한국 先비준 전략 아직 유효

EU와 FTA 서둘러서 타결

美압박 지렛대 활용 의견도

“협정 좌초땐 반발 직면할 것”

美내부 찬성 목소리도 비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현재 상태로는 수용할 수 없다’는 론 커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내정자의 발언으로 한미 FTA가 양국 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007년 4월 양국 정부가 협정문에 서명한 뒤 의회에서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아 2년간 표류해 온 한미 FTA는 발효조차 못한 상태에서 다시 기로에 서게 됐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침체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추가협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한국 정부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재협상보다 추가협상 가능성 커

전문가들은 미국의 통상 당국자들이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재협상(renegotiation)’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재협상은 협상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거나 협정문을 수정하는 것이어서 양국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기존 협정문을 그대로 둔 채 부속서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의 추가협상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운을 뗀 뒤 불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요구를 할 것”이라며 “자국 산업이 파산 위기에 직면한 자동차 분야를 먼저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업계에서는 “한국은 미국에 66만9000대를 수출하는데 미국은 5000대만 (한국에) 수출한다”며 ‘수(數)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도 협정문 내용이 한국 측에 전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닌 만큼 추가협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 보호, 농산물 개방 등의 분야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한국의 선(先)비준 전략은 여전히 유효”

미국 내부 사정이 복잡해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는 “협정문에는 미국의 자동차업계뿐 아니라 수많은 업종별 단체의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다”며 “(민주당이) 자동차 때문에 협정을 좌초시킬 경우 공화당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자동차 업계를 제외한 다른 제조업종이나 금융업계에서는 한미 FTA에 찬성하는 여론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미 재계회의에 참석한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미국 재계는 한국 국회가 FTA를 비준동의하면 (미국에서도 FTA가 비준되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이 먼저 비준한 뒤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선비준론은 여전히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투자정책실장은 “4월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을 처리해 협정문에 손을 댈 수 없도록 한 뒤 미국과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막바지 단계에 이른 한-유럽연합(EU) FTA 타결을 서둘러 미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EU의 교역 경쟁관계를 감안할 때 한-EU FTA가 타결되면 미국도 한미 FTA 비준을 마냥 늦출 수는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 쇠고기 연계 문제는 미지수

한미 FTA와 쇠고기 문제가 연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맥스 보커스 미 상원 재무위원장은 9일(현지 시간)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수입제한 조치를 거듭 문제삼았다.

미국 의회에서 FTA 법안은 하원 세입위원회를 거쳐 상원 재무위원회에 제출되기 때문에 쇠고기 문제는 계속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 육류업계는 30개월령 미만으로 제한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조건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FTA와 쇠고기는 별개’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데다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신뢰 문제와 연결돼 있어 이 주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지는 미지수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미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경기 부양이어서 FTA 등 통상 이슈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며 “금융위기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FTA 비준동의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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