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직원 “많이 위축되고 불안” 남측본사 “혹시 볼모로 잡힐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공단입주 98개 업체 당혹감에 ‘발 동동’

《북한의 남북 군 당국 간 통신선 차단 조치로 9일 개성으로의 입·출경이 막히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진이 통화한 현지 직원들도 긴장된 목소리로 “많은 직원이 위축되고 불안해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98개 업체가 입주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 기업이 매일 원자재를 들여오고 완성품을 내보내는 상황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왕래가 전면 통제돼 생산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北 일방통보… 첫날부터 생산중단 된 곳도

“특이사건 없다” 감청 우려한듯 전화 끊어






○ 인력-원자재 투입 중단, 생산 차질

개성공단에서 메리야스를 생산하는 제일상품은 이날 개성에 들어가기로 했던 교대인력 5명을 투입하지 못했다. 이 회사의 개성공장은 평소 상주인력 4명과 일주일 이상 체류가 금지된 비상주인력 4명으로 운영된다.

진경준 사장은 “갑작스럽게 통보받아 대응책은커녕 피해 규모도 산정하지 못했다”면서 “당장 자재가 못 들어가면 이틀 후에는 공장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애를 태웠다.

2004년 입주해 냉난방 공조장비를 생산하는 ㈜호산에이스의 경우 상주인원 7명 중 주말을 맞아 5명이 남한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현재 2명만 공장을 지키고 있다. 남한으로 내려오려던 인력은 북한의 조치를 기다리며 발이 묶인 상황이다. 조동수 사장은 “자재와 인력 투입은 물론 구체적인 업무 지시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휴대전화 부품을 생산하는 재영솔루텍은 매일 오전 화물차 2대로 자재를 반출하고 오후에 완제품을 갖고 내려온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자재 공급이 하루이틀만 늦어도 제품 생산에 지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4년 시범업체로 개성공단에 입주한 반도체 부품업체 ㈜티에스정밀은 최소 당직 인원 2명만 현지에 남은 상황에서 원자재 공급마저 막혀 이날 생산이 중단됐다.

○ 고객신뢰 잃으면 향후 영업도 지장

개성공단 입주업체 중에는 북측의 이번 조치를 계기로 생산라인 철수를 고려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몇 차례나 반복된 남북 긴장 고조로 벌써부터 거래처들이 납기를 못 맞출 것이라며 우리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다”며 “이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최악의 경우 중국 등 해외로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생산이 중단된 다른 회사 관계자는 “작업 중단으로 손실이 발생한 것보다 납품 계약을 한 고객사에 피해를 준 것이 더 치명적”이라며 “앞으로 어떤 업체가 이처럼 불안한 개성공단 입주업체에 발주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입주업체들 사이에선 이번 사태로 인한 손실 책임을 물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2004년 시범단지 단계부터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있을 것이란 말만 있었지 실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거의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면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 ‘혹시 볼모 될까’ 위축된 현지 직원들

이번 사태로 개성공단에 발이 묶인 남측 직원의 가족들은 ‘혹시 이번 사태가 장기화돼 볼모로 북한에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정상 가동된 KT 통신선을 통해 개성공단 현지와 연락하며 불안감을 달랬다.

한 입주업체의 서울 사무실 관계자는 “대부분의 통화가 북측에 감청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혹시라도 현지 직원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예민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회사의 A 대표는 “개성공단은 정치 문제가 개입될 여지가 많아 현지에 남아 있는 직원의 안위가 가장 걱정된다”며 “입주 후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져 왔는데 이번 사태의 강도가 가장 강한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통화한 한 입주업체의 현지 직원은 무척 긴장한 목소리로 단답형 대화만을 이어 갔다. 이 직원은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라며 “특이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현장 조업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다른 업체 직원은 “오후에 남쪽으로 내려가려던 직원들이 못 나가게 돼서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많이 위축되고 불안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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