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세제 바로잡자”…‘세금폭탄’ 뇌관 제거

  • 입력 2008년 9월 23일 02시 54분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등 정부 관료들과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서 있는 사람), 김광림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종부세 개편 관련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등 정부 관료들과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서 있는 사람), 김광림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종부세 개편 관련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개편안 의미

얼어붙은 부동산시장 살리기 의지 반영

야권-시민단체 “부유층만을 위한 조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노무현 정부가 헌법만큼 바꾸기 힘들게 만들겠다고 장담했던 이른바 ‘세금 폭탄’의 핵심이었다. 그 종부세가 폐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개편돼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됐다.

종부세 개편은 26조 원 감세안에 이어 MB노믹스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나타내는 정책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어느 정도 예고된 사안이다.

이번 종부세 개편안으로 ‘징벌적 부유세’라는 논란에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 대신 감세안 때와 마찬가지로 ‘부유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 껍데기만 남게 된 배경은

종부세는 이전 정부가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자 주택안정대책의 하나로 도입한 정책이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게 종부세를 물려 주택을 매물로 내놓도록 압박해 집값을 낮추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세금 부담이 갑자기, 그리고 과도하게 높아진 것이 문제였다. 특히 별 소득이 없는 연금생활자나 노령자는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 하거나 빚을 내 세금을 내야 할 형편이었다. 정상적인 세금이 아니라 강남 부유층에 물리는 징벌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종부세 개편은 이처럼 왜곡된 세제를 바로잡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부동산 시장과 전반적인 경기가 얼어붙은 것도 종부세 완화의 배경이 됐다.

정부는 또 종부세율을 내려 0.5%부터 시작하도록 해 재산세의 높은 세율(0.5%)과 일치시키도록 했다. 세율에서 더는 재산세에 부가되는 형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한 것. 장기적으로 종부세라는 껍데기마저 없어지고 재산세로 통합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이번 정부의 개편안은 종부세를 폐지하는 중간단계로 보여진다”고 진단했다.

6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 공제 조항을 새로 만든 이유는 납세 능력에 맞게 세금을 물린다는 납세 원칙을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개편 방안에서 그동안 유력하게 거론됐던 장기보유 특별공제는 빠졌다. 양도소득세와 달리 종부세는 보유에 대해 매기는 세금인 만큼 오래 보유한다고 해서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보유세의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기부양 큰 도움 안될 것”

국세청에 따르면 2007년 종부세 대상 37만9000가구 가운데 서울 강남구가 5만9000가구, 서초구 4만2000가구, 송파구 3만4000가구로 전체 종부세 대상자의 35.8%가 이른바 ‘강남 3구’에 거주하고 있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에서 양도세 및 상속·부유세 감면 등 부유층에 유리한 감세 조치를 내놓았다는 비판을 받은 데 이어 또 한 번 비슷한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또 종부세 대폭 감면이 부동산 시장 활성화나 경기 부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종부세 감면은 부유층 일부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는 것으로, 대상도 한정적이어서 경기 부양을 노렸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부자들을 위한 감세에 이어 또 하나의 부자들을 위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이 고비

이번 개편에서 가구별 합산 방식을 인별 합산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및 위헌 제청이 제기돼 있는 종부세 폐지 관련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행 가구별 합산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 적용 대상이 더 줄어들게 된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 당정 줄다리기 안팎

▼18일 심야회동-19일 발표연기 끝 잠정합의▼

당정이 22일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을 잠정 합의하기까지 정부의 시장주의적 원칙론과 여당의 속도 조절론 간에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정부는 당정협의 과정에서 종부세를 폐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반면 한나라당은 비(非)종부세 대상자의 상대적 박탈감과 부동산 시장의 동요를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열린 당정협의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종부세에 대한 강한 반감을 내비치며 ‘중장기’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종부세를 폐지해 재산세에 통합시키는 방안까지 거론했다. 반면 김성식 의원 등은 “1주택 고령자에 대한 감면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나머지 사안은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당정협의 이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종부세 개편이라는 원칙론에는 공감하지만 시기와 절차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박희태 대표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좌고우면(左顧右眄)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했지만, 허태열 최고위원 등 상당수 지도부는 신중론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부는 당초 19일 개편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당의 반대로 발표가 한 차례 미뤄졌다. 이와 관련하여 18일 심야에 정부와 여당 수뇌부가 긴급히 회동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계속됐다. 한나라당은 23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최종 당론을 결정한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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