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왜 먼저가냐 얼마나 무서웠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7월 16일 03시 01분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박왕자 씨의 발인이 1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가운데 아들 방재정 씨가 고인의 영정을 붙잡고 울먹이고 있다. 변영욱  기자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박왕자 씨의 발인이 1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가운데 아들 방재정 씨가 고인의 영정을 붙잡고 울먹이고 있다. 변영욱 기자
■ ‘금강산 피격’ 박왕자씨 어제 영결식

“홀로 얼마나 무서웠을까….”

금강산 관광 중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박왕자(53) 씨의 영결식이 열린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

오전 9시 반경 입관식을 위해 지하 2층으로 내려간 유족들은 창백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는 박 씨를 보는 순간, 애써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박 씨의 아들 방재정(23) 씨는 서 있을 기운도 없는 듯 비틀거렸다. 여동생 박미란(42) 씨는 “언니야, 왜 먼저 가냐. 지금 얼마나 억울하냐”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박 씨의 큰언니(55)는 푸르게 변한 박 씨의 입술을 보고 “홀로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렇게 됐을까”라며 울부짖었다.

입관식을 마친 뒤 유족들은 고인의 빈소가 있는 3층으로 옮겨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식 발인예배를 시작했다.

유족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박 씨의 영정 앞에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렸다. 예배 내내 눈물을 글썽거리며 어머니의 영정만 뚫어지게 보던 재정 씨는 이따금 괴로운 표정으로 영정을 쓰다듬었다. 그는 흰 국화를 영정에 대고 반쯤 넋이 나간 채 멍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던 박 씨의 남편 방영민(53) 씨는 아들이 고개를 숙인 채 영정을 부여잡고 흐느끼자 결국 그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친지들은 물론이고 장례지원을 위해 나온 현대아산 직원 30여 명도 이 모습을 보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지켜보던 한 유족은 “충격이 워낙 큰 데다 일정까지 길어져 다들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 있는 상태”라며 “특히 가족들은 서 있을 힘도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아산병원엔 힘든 몸을 이끌고 전북 김제에서 올라온 박 씨의 80대 노모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몸이 약한 노모가 충격으로 쓰러질지 모른다는 유족들의 염려로 결국 노모는 빈소가 있는 3층에 가지 못하고 1층에 머물렀다.

발인예배가 끝나고 박 씨의 시신이 영구차로 옮겨질 때까지 유족들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은 영정을 옆에 놓고 나란히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정 사진을 든 박 씨의 조카를 따라 빈소에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 재정 씨는 감정이 복받쳐 오른 듯 영정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손수건을 움켜쥐고 흐느끼던 박 씨 언니는 한동안 관을 붙잡고 “재정이는 어떻게 하느냐. 너무 불쌍하다”며 놓아주지 않았다.

영구차에 실린 박 씨의 시신은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장지인 경기 동두천의 공원묘지 예래원으로 향했다. 유족들과 현대아산 직원들은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그 뒤를 따랐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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