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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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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이 남긴 기록물에 대한 ‘열람권 보장’을 요구하지만 정작 현 청와대는 현직 대통령의 열람권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관리법)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은 자신이 남긴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다. 반면 현직 대통령은 엄격히 제한된다.
전직 대통령의 기록물이 후임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지만 국정의 연속성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후임자 열람권 제한=현직 대통령의 기록물 열람이 제한되는 이유는 대통령기록관리법의 취지에서 비롯한다. 이 법은 대통령의 국정자료를 가급적 온전히 보전해 후세에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선 조선시대의 사초(史草)처럼 후임자의 열람권 제한이 필요하다. 차기 대통령이 전임자의 기록물을 마음대로 볼 수 있으면 전 정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 예기치 않은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기록관리법은 후임자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 지정 기록물’ 조항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안전이나 국민경제의 안정 저해 △정무직 공무원의 인사 기록 △개인 사생활 자료 △대통령과 보좌·자문기관 간에 오간 의사소통 기록은 15∼30년간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아울러 ‘대통령 지정 기록물’을 전직 대통령 본인이 임의로 정하도록 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e지원의 파일이나 종이서류 215만 건 중 37만5000건을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묶었다.
물론 대통령 지정 기록물을 공개 대상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개헌 요건과 같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의 찬성이나 고등법원의 영장 발부가 있어야 한다.
▽국정 연속성 저해 주장도=열람권 논란의 핵심은 전직 대통령이 정한 비공개 대상의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공개 대상으로 전환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 정문헌 전 의원 등은 2005년 11월 대통령 기록물을 보존하는 내용의 ‘예문춘추관’ 법안을 최초로 발의하면서 비공개 기록물의 대상을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제27조)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이듬해 7월 제출한 법안과 병합 심사되는 과정에서 후속 법안에 흡수됐다.
이에 대해 정 전 의원은 “대통령 기록물을 보존하려는 의도도 좋지만 비공개 대상을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임 정부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부실해 자칫 국정의 연속성이 저해된다는 것이다.
미국도 전직 대통령이 직접 비공개 대상을 지정하지만 후임 대통령이나 의회가 업무와 관련해 해당 기록이 유일하다고 주장하면 관련 절차를 거쳐 공개 대상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 측은 “미국에서 공개 전환을 요구한 대통령은 한 명도 없었다”며 법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의 정치적 대립이 이 같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안이함이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당시는 기록물 이관 규정을 만들어 노무현 정부가 자신들의 실책이 담긴 문건을 파기할 수 없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법안을 통과시킨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