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포용’ 여야는 ‘포옹’의 정치를

  • 입력 2008년 5월 30일 02시 58분


14대와 16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장은 국회 개원 60주년과 헌법 제정 60주년을 맞아 29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법과 제도보다도 국회의원 개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애국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신원건 기자
14대와 16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장은 국회 개원 60주년과 헌법 제정 60주년을 맞아 29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법과 제도보다도 국회의원 개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애국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신원건 기자
■국회개원 60년 헌정 60년 이만섭 前 국회의장

원 구성 갖고 싸우면 출발부터 국민 불신

정치도 사랑처럼 계산 따지면 결국 손해

건전 보수와 열린 진보는 종이 한장 차이

국회의장은 마음속에서도 당적 없애야

::인터뷰=김차수 정치부장

14대와 16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장은 29일 “발전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예전보다 퇴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국회 개원 60주년과 헌법 제정 60주년을 맞아 한국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인터뷰에서 이 전 의장은 “국가 및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그 어떤 법과 제도보다도 국회의원 개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1시간 내내 애국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헌정 60주년이다. 국회의장을 2번이나 지낸 8선 국회의원으로서 소감은….

“그동안 민주정치가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여야 관계가 국정 동반자 관계가 아니고 대결 관계인 것도 사실이다. 또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기보다는 당리당략에 치우치는 것 같아 상당히 걱정스럽다. 갈수록 정치가 발전해야 하는데 과거 정치보다 후퇴하는 것 같아 걱정하는 때가 많다. 예전에는 여야가 몸싸움을 하는 등의 극한 대결을 하더라도 그 다음 날은 정을 나누고 나라 걱정을 함께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 정치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다. 현 체제처럼 대통령 권한이 너무 강하면 독선과 아집으로 흐르기 쉽다. 또 여야 간 대립도 극렬해진다. 지금은 한 사람이 모든 국정을 보기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 헌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이라도 국무총리나 장관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면 좋겠다. 대통령이 자꾸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이다. 민주정치를 하려면 여의도와 가까워야 한다. 당내 박근혜계도 포용하고, 야당도 국정 파트너로 삼고 일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인은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개인과 당이 아닌 국민을 위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성사시켰는데 통합민주당이 비준을 거부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한미 FTA 문제를 두고 미국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한마디한 것을 여야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FTA 자체가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배치되느냐라는 기준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FTA는 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서둘러 비준해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 낫다.”

―최근 쇠고기 수입 문제 등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격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건전한 보수와 열린 진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지난 선거 때 보수가 이겼다고들 하는데 동의하기 힘들다. 그보다는 경제를 살려달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었다. 이른바 ‘386’이라는 진보세력은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킨 보수세력의 공적을 인정하고 보수세력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고 헌신한 진보세력의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어우르는 화합정치가 돼야 국민소득 4만 달러도 가능하다. 그래야 통일에도 대비할 수 있다.”

―원로로서 국정 운영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대통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손끝으로 지휘만 하고 말수를 줄였으면 좋겠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고 자기 말에 말려들어 간다. 또 정책에 혼선이 온다. 예전에는 대통령이 막걸리를 앞에 놓고 원로들의 의견을 묻곤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로는 그런 것이 없어져 안타깝다.”

―30일부터 18대 국회가 시작된다. 어떤 식으로 꾸려나가야 하나.

“여야가 원 구성 문제로 공전(空轉)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처음부터 불신받는다. 원 구성은 과거 관례를 따르는 것이 좋겠다. 국회 운영을 성급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여야가 대화하면서 신중하고 성실히 국민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운영해야 한다. 민생문제를 가장 신경 써야 한다. 감세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은 경기 회복과 직결돼 있는 아주 중대한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의 친박 복당 논란이 해결되면 거대 여당이 되고, 민주당은 과거에 비해 의석수가 줄어 극한 대립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여야 모두 국가와 국민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거대 여당이 됐다고 독선적으로 하면 안 된다. 국민이 반대하는 것을 밀어붙이기로 해결하면 안 된다.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안 된다. 81석은 결코 적은 의석이 아니다. 건전한 정책 대결을 통해 야당에 정권을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개인적으로 만나면 똑똑하지만 집단으로 행동할 때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의원들은 국민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 당론에 반대할 줄 알아야 한다. 절대로 정치인은 계산을 하면 안 된다. 저 여자와 결혼하면 열쇠 3개는 받을 것이라고 해서 결혼했다가 파경하는 것과 같이 정치에서도 계산을 하면 결국 손해를 본다. 대통령과 당에 잘 보이면 앞으로의 정치 행보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을 버려라.”

―국회의장 경험을 바탕으로 새 국회의장에게 조언한다면….

“두 번 하면서 입법부의 독립과 국회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회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일했다. 날치기 통과 근절을 위한 국회법 개정에 앞장섰다. 의원들이 당론에 의존하지 않고 투표할 수 있도록 자유투표 조항도 만들었다. 국회는 국민의 국회이지 여당의 국회도, 야당의 국회도 아니다. 국회의장은 형식상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당적을 없애야 한다.”

○ 이만섭 전 국회의장

△1932년 대구 출생 △1950년 대구 대륜중학교(6년제) 졸업 △1950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입학, 6·25전쟁으로 군 복무 △1953년 공군 제대 후 복학△1956년 동화통신사 정치부 기자 △195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59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주일·주미 특파원 △1963년부터 6, 7, 10, 11, 12, 14, 15, 16대 국회의원(8선) △1978년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1985년 한국국민당 총재 △1993년 제14대 국회의장 △1997년 국민신당 총재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2000년 제16대 국회의장

정리=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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