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명박정부 대북정책’ 관망 끝내고 행동개시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20분


개성 다녀오는 관광객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당국자 11명이 북측의 요구로 철수한 가운데 27일 개성 관광을 마친 관광객들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파주=원대연 기자
개성 다녀오는 관광객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당국자 11명이 북측의 요구로 철수한 가운데 27일 개성 관광을 마친 관광객들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파주=원대연 기자
■ 경협사무소 남측요원 추방 파장

북한이 개성 내 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한국인을 사실상 ‘강제추방’하는 강수를 뒀다.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핵 문제와 개성공단 사업 확대를 연계시킨 발언을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상대방의 대응 태세를 시험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간파하고 지나친 흥분이나 과민반응을 자제하기로 했다. 비록 일시적인 남북관계의 경색이 오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남한이 주도하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새 정부 대북정책 불만 표시=청와대 관계자는 27일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기다리고 살펴왔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그동안 유심히 관찰해 온 결과를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부터 새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합의 사항을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각종 공식 발언을 통해 과거처럼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고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명백히 했다. 김 장관도 취임 이후 북한 핵 포기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고 남북 경협은 물론 인도적 지원에도 ‘상생’과 ‘호혜’라는 조건을 다는 등 대북정책의 각론을 제시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사태를 통해 남한에 “어서 쌀과 비료를 지원하고 10·4선언 이행 의지를 밝히라”는 강한 촉구의 메시지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남북관계의 단절을 향한 ‘1차적 행동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지적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더는 남한에 쌀과 비료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보인다”고 말했다.

▽긴박했던 개성의 4일=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측은 24일 오전 10시경 이인호 북측 경협사무소장을 통해 김웅희 남측 경협사무소장에게 ‘3일 안에 당국의 인원을 전원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북측은 “상부의 지침”이라고만 밝혔다.

이에 남측은 북측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공식 견해를 문건으로 통보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측은 거듭 철수를 요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26일부터 북측에서 ‘왜 철수하지 않느냐’는 압력이 들어왔고 더 남아 있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이날 밤늦게 철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경협사무소에 상주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27일 0시 55분 관용차 2대로 사무소를 떠났고 오전 1시 25분경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남북 간에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

▽침착한 대응으로 새 남북관계 정립=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원칙을 지키되 유연하게 실용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스스로 먼저 흥분하거나 과민 반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북에) 당근(유인)책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실장도 “새 정부가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으며 개성공단 사업 확대의 조건은 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 핵 문제 해결에 대한 북의 성의 있는 자세라는 것을 진지하게 설득해 강경파의 득세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상황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양 교수는 “최고지도자의 결심이 섰다면 북한은 조만간 관계 단절을 위한 2차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남북 당국 간 또는 준당국 간 대화 중단 성명이나 서해에서의 해상 무력 도발, 공해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미 협상이 진행 중이고 중국 베이징 올림픽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극심한 식량난에 빠진 북한이 남북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북한이 이날 6자회담 경제·에너지 협력 실무접촉을 예정대로 판문점에서 개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개성경협사무소

남북직원 함께 근무

경제협력 상시 논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는 남북 간 상시적 경협 협의를 위해 2005년 10월 북한 개성에 문을 연 당국 간 첫 상설 기구. 새 정부 출범 후 통일부의 직제 시행령 개정에 따라 정식 명칭이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로 바뀌었다.

남북 간에 대사관이나 이익대표부가 없는 상황에서 양측 당국자들이 근무하며 각각의 이해를 대변하는 남북 공동의 장소다. 남측 사무소에는 통일부, 기획재정부 등의 당국자 11명이 상주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진흥공단, KOTRA, 한국무역협회 등에서 5명이 나가 있다. 북측 사무소에는 지원 인원을 포함해 10명 안팎이 근무하고 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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