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면담 응하려던 부시, 언론에 공개되자 “없던 일로”

  • 입력 2007년 10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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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망신 논란을 빚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면담 파문의 진실은 무엇일까.

본보는 16일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한 백악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이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이 후보를 만나기로 결정했으나 그 만남은 이 후보가 다른 백악관 간부를 만나는 자리에 우연히 들르는 형식으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이런 면담은 사전에 외부에 알려질 경우 즉각 취소되는 비공식 면담 방식인데 워싱턴 정치문화를 잘 모르는 이 후보 캠프가 경솔하게 공개함으로써 무산됐다는 것이다.

다음은 백악관 관계자의 설명 요약.

"미국 대통령은 가끔 외국의 정치인을 만난다. 대개 나중에도 기록에 남기지 않는 비공식 면담이다. 방문자가 자기 분야에 관련된 백악관 간부를 만나고 있을 때 대통령이 우연히 들러 얘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면담이후에도 백악관은 이를 발표하지 않는다. 만나고 나간 사람이 세상에 알리는 건 대개 문제 삼지 않는다. 이 후보와의 면담도 이런 형식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이나 앨런 허버드 경제보좌관 등을 만나는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언론에 공표된 순간 면담은 아예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 면담은 국가안보위원회(NSC)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국무부도 몰랐다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런 비공식 면담은 공식 계통을 밟아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NSC에 나중에 알려주고 의견을 듣지만 NSC의 의견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부시 대통령이 면담 요청에 응하기로 마음먹은 주된 요인은 한국 정부에 대한 '마땅치 않은 감정'(displeasure)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국의 선거는 이번 결정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리처드 숀버그 전 법무장관,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위원 등 여러 사람이 부시 대통령에게 면담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중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일레인 차오 노동장관의 남편) 의원의 편지가 영향을 많이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백악관 관계자의 설명에 덧붙여 싱크탱크 관계자는 "워싱턴 내부 정치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 후보 캠프가 홍보욕구를 참지 못해 면담을 스스로 무산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이 강영우 위원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이 관계자는 "사실상 만나기로 했다는 뜻을 담은 편지로 봐야한다. 이런 종류 면담 때 의례 보내는 양식이다. 물론 만날 의사가 없을 때도 비슷한 형식의 편지를 보내지만 그럴 때는 날짜를 명기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정부가 항의해 면담이 무산됐다는 강영우 위원의 주장에 대해 그는 "한국정부의 항의가 있었는지는 모른다"며 "분명한 것은 이 후보 캠프측이 언론에 흘리는 순간 면담은 이미 없었던 일이 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또 한 백악관 관계자는 이달 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백악관은 불만이 많다. 대북(對北) 원조와 핵문제를 연계하거나 구체적인 시간표를 논의한 게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싱크탱크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 백악관 관계자는 지난달 7일 호주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언론회동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종전선언에 대해 명확히 밝혀달라고 거듭 요청한 것과 관련, "당시 정상회담 전에 미국 측은 '성공적인 회담으로 보이도록 하자'고 마음을 먹고 갔고 그렇게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회동에서의 일은 통역에도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애써 성공적인 회담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일이 생겼고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not thrilled)"고 말했다고 싱크탱크 관계자는 전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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