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민간선박 NLL 넘나들게…‘경계선’ 지위 약화

  • 입력 2007년 10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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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언문 서명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평양=연합뉴스
공동선언문 서명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평양=연합뉴스
1 《남과 북은 6·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이번 정상선언에서 남북은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바탕을 둔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에 접근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이번 선언에 따라 양측은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제안한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방안도 실무 차원에서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부는 통일방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상호 신뢰를 키워 평화와 공동번영을 실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선후보 시절 합동토론회에 나와 “통일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평화의 축적과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4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와 연 정상회담 보고회에서 “통일문제는 6·15공동선언에 잘 정리돼 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독일과 같은 급작스러운 통일을 바라지 않으며 상호 공존 공영하는 통일을 바란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6·15공동선언의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사회적 논란이 적지 않았다. 6·15공동선언에 담긴 남북한의 통일방안은 본질적으로 함께 갈 수 없는 서로 다른 방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6·15공동선언 2항은 “남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따라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를 이루는 하나의 통일국가를 목표로 하는 과도적인 단계인 남한의 연합제와 달리 북한의 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연방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남북이 서로 정치 외교 군사 등에 대해 독자적인 권한을 가진 상태로 ‘한 지붕 두 가족’의 통일을 하는 방식이다.

특히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주체사상을 통일철학으로 하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도 주요 논란거리가 돼 왔다.

또 남북이 ‘우리민족끼리’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강조하는 것에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또다시 이를 내세운 것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두 정상은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합의했지만 이것도 남측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북은 2001년부터 해마다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를 하고 있으나 남북 간의 견해차로 파행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2《남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각자 법률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간다.》

북한의 대표적인 ‘내부문제’인 인권문제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지적해 왔고, 일각에선 이를 대북 지원과 연계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때마다 북한은 ‘주권 침해’라면서 기존 협력사업도 재검토하겠다며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인권문제를 다루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을 반영하듯 이번 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비롯해 납북자와 국군 포로문제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합의는 정상회담 개최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방북 며칠 전의 정례 브리핑에서 ‘아리랑’ 공연이 아동 인권 침해라는 지적에 대해 “인권문제는 지역의 환경과 특성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북한 평양방송도 지난달 11일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되는 인권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미국이 ‘인권 유린의 주범’이라는 게 우리의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문제는 향후 남북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눈을 감기로 작정했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고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도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지난달 18일 개막한 제62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여전히 위험한 수준이라는 ‘북한 인권보고서’가 제출된 바 있다.

한편 남북관계의 통일 지향적 발전을 위한 법률 제도적 장치의 정비는 국가보안법의 개폐에 대한 이면 보장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남북관계 발전의 주요 장애물이라며 철폐를 요구했던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또다시 이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책기관의 한 전문가는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대남적화전략이 명시된 노동당 규약의 전면 수정 등 북한의 신뢰할 만한 조치가 선행된 뒤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3《남북은 서해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 해 11월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 협의한다.》

남북 정상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이하 서해특별지대)의 설치를 위한 남북 협력사업의 군사적 보장 원칙에 합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4일 귀환 직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열린 보고회에서 “서해특별지대 제의는 이번 남북공동선언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진전된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며 “해주공단 개발, 한강하구 공동 이용 등을 엮어 포괄적으로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결하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핵심 사안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는 NLL 문제는 수도권 안보와 직결되는 중대 안보 현안인 만큼 정치적 협상의제로 다뤄져선 안 된다는 남측의 강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로 북한 민간 선박들이 해주 직항로로 운항하게 되면 NLL의 군사적 실효성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은 “남북 간 군사 신뢰 구축이 미진한 상황에서 NLL에 미칠 군사적 영향을 검토하지 않고 섣불리 합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군의 안보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장정길 전 해군참모총장(예비역 대장)은 “해주 직항로를 따라 NLL을 가로지르는 북한 선박들을 검색하느라 해군의 경계 부담이 높아지고, 북한이 직항로를 오가며 우리 군의 서해 경비태세를 손쉽게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공동어로수역::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남북한의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NLL 인근 해역 가운데 남북 어민들이 함께 고기잡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지정한 수역. 제3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서해 5도 주민의 생업 공간이어서 수역의 설정 범위와 조업 허용 수준에 따라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북방한계선(NLL)::

1953년 7월 27일 남북 간 육상경계선을 설정한 정전협정 직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북한과 협의 없이 설정해 북한에 통보한 해상한계선. 영문(Northern Limit Line) 머리글자를 따서 ‘NLL’로도 부른다. 북한이 1973년 NLL 남쪽을 북한 수역이라고 주장한 이후 수시로 NLL을 넘어와 남한과 잦은 충돌을 빚고 있다.

도움말 준 전문가 명단 (가나다순)

고유환 교수(동국대 북한학과)

김성한 교수(고려대 국제대학원)

김태효 교수(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희상 전 대통령국방보좌관

남성욱 교수(고려대 북한학과)

남주홍 교수(경기대 국제정치학과)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

백승주 박사(한국국방연구원)

서주석 박사(한국국방연구원)

신언상 전 통일부 차관

유호열 교수(고려대 북한학과)

이기동 책임연구위원(국가안보전략연구소)

장정길 전 해군 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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