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卞 소용돌이’속 긴급간담회… 靑 “주제는 李고소 건”

  • 입력 2007년 9월 12일 03시 01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신정아 씨 사건’ 연루 의혹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신정아 씨 사건’ 연루 의혹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경제 기자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오전 10시 40분 춘추관에 있던 기자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30분 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 것”이라고 공지했다. 그는 “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다. 청와대가 이 후보를 고소한 것에 대한 논란이 계속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전날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신정아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물러나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열리는 간담회 주제가 이상하다고 느낀 기자들이 “변양균 건은 얘기 안 하나”라고 재차 묻자 천 대변인은 “물음이 있으면 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 모두(冒頭) 발언에서 변 전 실장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사건에 관한 언급에 앞서 취재 통제 논란을 부른 ‘취재지원 시스템 개선’과 청와대의 이명박 후보 고소 문제를 먼저 거론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변 전 실장과 정 전 비서관 사건에 관한 질문에 답하면서 ‘난감’ ‘황당’ ‘당황’ ‘곤혹’ 등의 단어를 9번이나 사용했다.》

▽“야당 후보 고소는 원칙 위한 것”=청와대가 공작정치의 배후로 ‘권력 핵심’을 거론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대해 노 대통령은 “투명한 정권, 공작하지 않는 정권이라는 핵심 가치를 (이 후보가) 아무 근거도 없이 공격했다”며 “근거가 없으면 그건 불법적인 선거운동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고 후보도 법 위에 있지 않다. 선거에 영향이 있다고 해서 범법행위를 용납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논리냐”고 따졌다.

‘선거 개입을 위한 야당 후보 고소’라는 시각에 대해 노 대통령은 “(대선에서) 어느 쪽이 이겼으면 하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서 내가 원칙에 없는 고소를 했다는 것은 나를 고의로 모욕하기 위해서 하는 얘기”라며 “내게 중요한 것은 원칙이며 원칙이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라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때는 ‘그놈의 헌법’이라고 탓하더니 이제는 법을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유리하면 법을 찾고 불리하면 악법이라고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선거판에 개입하며 법 위에 있었던 사람은 바로 노 대통령”이라고 가세했다.

이명박 후보도 이날 서울 중구 을지로 헌정회를 방문해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혼돈 속에 가치관과 건국이념, 헌법정신이 흔들렸다”며 “대통령도 헌법 아래에 있고 누구도 헌법에 도전할 수 없다. 누구든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손학규 전 지사에게도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손학규 씨가 하는 것을 보니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졸렬한 전략이고 필패 전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지지도가 낮지만 내 정치적 신념과 역정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상당수의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는데, 살얼음판을 디디는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그렇게 하는 것은 현명한 전략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또 “선거법이 대통령을 ‘거세된 정치인’으로 규정해 놓고 있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유리하지 않을 것 같다”며 선거법에 대한 불만을 거듭 표시했다.

손 전 지사 측 우상호 대변인은 “청와대 고위급 인사들이 손 후보를 돕고 있는 인사들을 압박하니까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청와대가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때려 놓고 왜 대드느냐’ 식의 적반하장”이라고 반박했다.

▽사과 않고 “힘들다” 한탄=노 대통령은 변 전 실장 문제에 대해 “제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이 무너져 당황스럽고 힘들다”면서도 “검찰 수사를 기다려서 결과가 확정되는 대로 국민께 제 입장을 말씀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뭐라고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는 비서진의 의견을 소개해 놓고도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당황스럽고 힘들다는 심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변 전 실장 문제 등에 대해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단언해 국민을 오도하게 만들었던 실수를 인정한다면 솔직하게 사과를 해야 하는데도 ‘특유의 오기’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또 이 사건 등을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규정해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사과와 함께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 문제에 대해서도 “저와 그 사람과의 관계로 봐 제가 사과라도 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아무 사실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사과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최측근이 세금 감면을 바라는 기업인을 지방국세청장에게 소개해 뇌물이 오갈 환경을 만든 사실이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에 당연히 사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에게 어떤 사람을 중용해 쓰느냐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결과에 따라 제 입장을, 또 기회가 있으면 여러분께 말씀드리겠다”며 복수의 전제 조건을 달아 나중에 사과를 할 수도 있다는 의사만 피력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깜도 안 되는 의혹” “꼭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변 전 실장과 정 전 비서관을 감쌌던 노 대통령이 이제 와서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얘기하는 데 대해서도 “원칙 없는 말 바꾸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