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21명 아프간서 피랍 “한국군 오늘내 철수안하면 처형”

“믿기지가 않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김경자 씨의 언니가 20일 납치 소식을 들은 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샘물교회에 들어서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른 피랍자 가족들도 충격 속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성남=원대연 기자

한국인 21명이 19일 아프가니스탄 가즈니 주 카라바그 지역에서 현지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이들을 납치한 탈레반 무장세력은 21일 정오(한국 시간 오후 4시 30분)까지 한국군과 독일군이 아프간에서 철군하고, 탈레반 수감자 전원이 석방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AP통신과 DPA통신이 20일 보도했다. 독일인 근로자 2명은 한국인들에 앞서 18일 납치됐다.

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AP통신과의 통화에서 “그들(한국)은 내일(21일) 정오까지 아프간에서 그들의 군을 철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디는 DPA통신에도 전화를 걸어 “만약 (한국, 독일, 아프간) 관계 당국이 우리의 요구를 협의하기 위한 접촉을 해오지 않는다면 상황은 매우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접촉을 해온다면 우리는 살해 시한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현재 아프간엔 한국군 의료지원 부대인 동의부대와 재건사업을 담당하는 다산부대 장병 200여 명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8000여 명과 함께 다국적군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한국군 철수 요구 등 외신 보도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무장세력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외교통상부 조희용 대변인은 “아프간을 여행 중인 한국인 19명과 현지 안내인 2명이 19일 오후(한국 시간 19일 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남부 칸다하르 시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무장세력에 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탈레반에 피랍된 한국인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샘물교회 교인 19명과 아프간 현지에서 이들의 안내를 맡은 아시아협력기구(IACD) 한국인 관계자 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IACD는 기독교 계열 비정부기구(NGO)다. 한국인 피랍자의 성별은 남자 7명, 여자 14명이다.

샘물교회 측에 따르면 이 교회 배형규(44) 목사와 20, 30대 교인 등 20명(남자 7명, 여자 13명)은 13일 봉사활동을 위해 아프간으로 갔으며 23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1명은 중도에 귀국했다. 샘물교회 측은 19일 오후 배 목사 일행과의 연락이 끊기자 외교부에 실종 신고를 했다.

아프간은 정부가 가급적 여행을 삼갈 것을 권유하는 여행제한(여행경보 3단계) 지역이다.

탈레반 무장세력은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NATO군을 몰아내기 위해 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외국인 납치를 자행해 왔다.

정부는 외교부에 대책본부를 마련하고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에 현장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피랍사건 발생 사실을 보고받고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하라”며 “상황 전개에 따라 수시로 보고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히 납치단체가 한국군 철수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어 이 부분을 주시하며 상황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아마드 자위드 아자드조이 주한 아프간 대리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협조를 요청했으며 한국인에 대한 모든 비자 발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