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타결]“이념 아닌 먹고사는 문제…소신갖고 결정했다”

  • 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따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국은 어떤 개방도 충분히 이겨낼 만한 국민적 역량을 갖고 있다”며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국론 통합을 당부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따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국은 어떤 개방도 충분히 이겨낼 만한 국민적 역량을 갖고 있다”며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국론 통합을 당부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일대국민 담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여론에 정면으로 맞설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진통 끝에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지만 국회의 비준 동의를 얻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의식한 듯했다.

노 대통령은 평소 즉흥적인 연설을 즐겨 온 것과는 달리 이날은 준비된 담화문을 거의 그대로 읽었다.

다만 ‘15년’인 쇠고기 관세 철폐 기간을 ‘10년’으로 잘못 읽었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담화문 요지.》

■ 盧대통령 대국민 담화

그동안 정부는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중심에 놓고 협상을 진행했다. 철저히 손익 계산을 따져서 우리의 이익을 관철했다.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작은 장사꾼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미래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의 변화까지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

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 섬유, 전자 등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은 물론 신발, 고무, 가죽과 같은 중소기업 제품들도 경쟁국가에 비해 가격우위를 확보하게 됐다. 100조 원이 넘는 미국 조달 시장의 문턱도 크게 낮아졌다.

개성공단 제품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립에 합의해 국내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앞으로 개성공단뿐만이 아니라 북한 전역이 혜택을 받을 것이다.

물론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FTA로 인해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많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농업과 제약 분야 이외에 어느 분야가 더 어려워지고 실업자가 나온다는 것인지 물어 보았으나 아무도 분명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막연히 ‘양극화’라는 말만 주장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법률, 회계 등 고급 서비스시장도 일부 개방됐다. 이 부분에 관해 나는 좀 더 과감한 개방을 지시했다. 그래야 고학력 일자리도 늘릴 수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 서비스업 분야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도 이제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 미국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쇠고기에 대한 관세 문제는 FTA의 협상 대상이지만 위생 검역의 조건은 FTA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원칙대로 FTA 협상과 분리하여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를 통해 한국은 성실히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점, 협상에 있어서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으로 확인해 주었다.

이렇게 한 것은 지난날 뼛조각 검사에서 한국정부의 전량 검사와 전량 반송으로 인해 미국이 앞으로의 쇠고기 협상과 절차 이행에 관해 한국정부가 성실하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을 가지고, 뼈를 포함한 쇠고기의 수입과 절차의 이행에 관해 기한을 정한 약속을 문서로 해 줄 것을 요구한 데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쌍방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적절한 타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면 쇠고기의 수입이 가능한 시기를 추정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것을 기한을 정한 무조건적인 수입의 약속이라고 하거나 이면계약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압력’이라는 얘기가 난무했고,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매국’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정부가 무엇이 이익인지 손해인지조차 따질 역량도 없고, 줏대도 없고, 애국심도 자존심도 없는 그런 정부는 아니다. 한미 FTA는 시작 단계부터 우리가 먼저 제기하고 주도적으로 협상을 이끌어낸 것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아무런 정치적 이득도 없다. 오로지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내린 결단이다.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이다.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다. 민족적 감정이나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일은 아니다.

앞으로도 다른 분들의 치열한 반대가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반대하는 분들에게 요청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토론에 임해 달라는 것이다.

이번 FTA 협상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국회에서 전문가들의 책임 있는 논의를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국회에 나가 소상히 설명 드리고 토론에 적극 응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어떤 개방도 충분히 이겨낼 만한 국민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지난날 개방 때마다 많은 반대와 우려가 있었지만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너무 방어 잘해 불만”

盧대통령, 법률-회계-교육-의료-방송 문화 언급

“더 개방하라 지시했는데…” 이익단체 우회 비판

‘선방(善防)했지만 불만?’

노무현 대통령은 2일 국익을 지키기 위해 애쓴 한미 FTA 우리 측 협상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법률, 회계, 교육, 의료, 방송 문화산업은 더 개방했어야 했다고 예기치 못한 ‘불만’을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담화 중반에 “법률, 회계 등 고급 서비스시장도 일부 개방됐는데 이 부분은 더 과감하게 개방하라고 지시했다”며 “그래야 고학력 일자리도 늘릴 수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 서비스업 분야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교육, 의료 시장은 전혀 개방되지 않았고, 방송 등 문화산업 분야도 크게 열리지 않아 역시 아쉬운 대목”이라며 “문화산업도 세계, 그중에서도 미국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고, 공공서비스와 문화적 요소는 보호하되 산업적 요소는 과감하게 경쟁의 무대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들 분야는 우리 협상팀이 방어를 너무 잘한 것 같아 칭찬할 일이지만 솔직히 불만스럽다”며 “(국회에서) 비준의 어려움을 고려해 그런 것 같지만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정부가 각종 이익단체의 반발 때문에 미국의 개방 요구를 막아내야 했지만 이들 분야는 오히려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소신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 분야의 경우 협상 초기에 평가(testing) 분야 개방 등의 요구가 있었지만 미국은 큰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한국의 초중고교는 각종 국제평가에서 최상위권의 경쟁력을 보이고 있지만 고등교육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어 개방을 통해 국내 대학의 분발을 자극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교육시장을 개방하면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대학은 물론 초중고교까지 무너진다는 대학교수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반발과 외국 대학 진입을 막는 각종 규제가 교육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리거나 법학전문대학원제도를 도입하려는 참여정부의 사법개혁 추진이 법조계의 거센 반발로 지지부진한 점 또한 노 대통령은 의식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의료’ 분야라고 언급했지만 전문가들은 의약품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제약업체들은 유명 외국 회사의 복제약을 만드는 데 치중하고 신약 개발을 등한시하고 있어 대형 외국제약사가 들어오면 국내 업체도 자극을 받아 신약 개발에 힘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