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경원]‘北의 비핵화’ 그 후를 대비하라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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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6자회담의 2·13합의를 환영하고 있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우리 민족의 안보와 경제, 나아가서는 우리의 존재까지 위협할 수 있는 그야말로 고약한 문제다. 그렇기에 국민 대다수가 2·13합의를 환영하면서 한반도 통일의 전기를 바로 2·13합의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할 때이다. 특히 원래 의도한 바와 달리 6자회담의 진행 과정에서 힘의 균형이 한 방향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우리에게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주변 정세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 돌아가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이미 동북아 정세는 6자회담을 하는 동안에도 의미 있는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 사이의 균형이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지난 15년 가까이 북한 핵문제를 다뤄 오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실제로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나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북핵 이슈가 해결된 이후의 상황을 예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북핵 이후 한국의 상황에 관해서는 핵을 포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와 실패하는 경우의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북한이 끝까지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이다. 이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문제는 북한이 어느 시간의 틀 속에서 최종적인 입장을 통고할 수 있는 것인가, 최종 결정의 순간을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등에 있다. 결국은 협상과 제재(sanction)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정책적 목적을 위한 폭력 수단의 활용이라는 면에서 대단히 복잡하고 세밀한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음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받아들이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핵협상의 성공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이미 합의서에 대한 비판이 빠르게 번져 나가고 있다. 특히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에 대해 2·13합의서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자처하려고 할 때 6자회담이 북한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비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앞으로 2·13합의에 대한 토론은 치열하고 예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 강국 파워 급격히 이동

북의 국제사회 복귀 도우며

한미동맹 한층더 강화해야”

그러나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은 모두 핵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의사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해 온 민주당 좌파세력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대한반도 정책을 조정 중인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핵문제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선에서 해결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우리의 상황은 어떻게 된다고 봐야 할 것인가?

한국외교는 처음부터 서독의 대동독 정책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에서 출발해 1970년대에 와서 비로소 어느 정도의 신축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냉전 종식 이후부터는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전제로 하는 전략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적으로 더 깊은 고립의 골짜기로 빠져들어 갔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한국외교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외교가 그렇게 힘이 세지는 않았다. 북한 자신이 굶주림과 인권유린, ‘낙원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언행을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반복함으로써 비정상적인, 일종의 사교집단과 같은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조성한 셈이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정치적 판단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명적인 요소의 집합과정을 통해 얻어진 인간적 비극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한 해석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북한은 경제파탄이라는 무서운 구조적 상황에 봉착하게 됐고 그 결과로 북한은 고립과 참여의 양극을 오가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북한의 지도자는 지금 참여와 발전을 위한 개혁의 필요성과 정권 안정을 위한 권위주의 체제가 모두 필요한 변수라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필요한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햄릿처럼 고독한 군주의 종말을 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북한의 리더십은 지금 외롭고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2·13합의가 일정 부분 북측의 결단의 결과라면 미래로 향하는 창문이 모두 닫혀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핵문제 해결은 북한에 미국과의 접촉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을 수 있다고 본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북한은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한국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북한이 고립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한편으로 북의 국제사회 참여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보호할 줄 아는 지혜를 보여 주는 일이다.

김경원 전 주미대사·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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