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대상 모호…‘상시적 언론검열’ 결과 낳을수도

  • 입력 2006년 12월 18일 03시 00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4일자로 본보에 보낸 ‘대선 입후보예정자 대담 관련 기사 게재 중지 촉구’ 공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4일자로 본보에 보낸 ‘대선 입후보예정자 대담 관련 기사 게재 중지 촉구’ 공문.
‘대담이라 함은 1인의 후보자 또는 대담자가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후보자의 정견 기타 사항에 관해 사회자 또는 질문자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는 것을 말한다.’(공직선거법 81조 2항)

‘텔레비전, 라디오, 정기간행물사업자, 인터넷언론사는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선거일 전 120일부터 선거기간 개시일 전일까지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초청하여 대담·토론회를 개최하고 이를 보도할 수 있다.’(공직선거법 82조 1항)

이 두 조항에 따르면 기자의 인터뷰도 대선 후보와의 대담이 되고, 따라서 내년 8월 21일 전까지는 기자들이 18대 대선 후보와 만나 인터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논리다. 다만 후보를 쫓아다니며 취재하는 것까지 대담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동행 인터뷰’는 괜찮고, 후보 사무실을 찾아가는 ‘방문 인터뷰’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헌법학자와 언론학자들은 선관위의 이런 법 해석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비판했다.

▽선거 과열 방지 위해 알 권리 막는다?=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선관위가 헌법과 선거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과열 방지’를 위해 ‘알 권리’를 희생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비판이다.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황용석 교수는 “어떤 선거든 제대로 치러지려면 언론을 통한 후보 검증과 자질 평가가 꼭 필요하다”며 “선관위가 법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해석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언론의 기능을 막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기본권인 언론 자유를 선거기간이라는 특정 시기에 한해 선거법에 의해 제한하는 것인데 선관위 해석대로라면 선거기간이 아닌 때조차 언론이 상시 검열 상태에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선주자들의 정견과 공약 등을 알아보는 인터뷰 기사는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판단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속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언론 인터뷰가 ‘대담·토론’에 해당?=선관위는 기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대선주자의 공약이나 정책 등을 보도하는 것도 대담 토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는 어떤 취재와 보도 방식이 이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대담·토론’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의견이다. 선거법에서 조기 개최를 금지하는 대담·토론회는 일종의 집회 개념으로 사회자와 질문자뿐 아니라 청중이 있는 경우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선거법 81조에도 ‘사회자 또는 질문자’라는 문구가 있는 만큼 사회자와 패널이 정해져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

동국대 법대 김상겸 교수는 “선거법 82조의 의미는 공식적인 토론회를 가리킨다”며 “기자의 인터뷰는 중요한 취재수단이자 언론 자유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터뷰하는 기자가 한 명이든 10명이든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상·시기도 모호=‘정견·정책을 묻는 대선 후보에 대한 인터뷰는 대통령선거일 120일 전부터 가능하다’는 선거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자칭 또는 타칭 대선후보는 2년 전, 3년 전에도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언제부터 할 수 있다’는 말만 있지 언제부터 금지되는지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규제 대상인 대선 입후보 예정자의 개념도 뚜렷하지 않다. 인터뷰 대상이 실제로 대선에 나갈지, 안 나갈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터뷰가 문제 될 수도 있다.

고려대 법대 장영수 교수는 “이 조항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며 “언론 자유 측면에서 이 조항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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