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거짓 이미지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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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6월 독일 나치정권은 유대인 대량학살 소문을 근절하기 위해 국제적십자사 측에 유대인 수용캠프 방문을 허용했다. 체코에 만들어진 테레지엔슈타트 시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가짜 상점과 카페가 들어선 이곳에서 유대인이 공연한 오페라까지 관람한 적십자사 대표단은 ‘학살 소문 근거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나치는 유대인의 평화로운 생활상을 담은 선전 영화까지 전 세계에 뿌렸다. 그 뒤 유대인 제작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보내졌다.

▷가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선전선동의 기본이다. 나치는 아돌프 히틀러가 예수와 같은 구세주(救世主)라고 암시하는 포스터까지 만들어 돌렸다. 적(敵)은 당연히 나쁜 이미지로 조작한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은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주교 신도를 자극하기 위해 미군 흑인병사가 교회의 예수 십자가상을 파손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뿌렸다.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최근 본보 대담에서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이 북한에 대한 ‘거짓 이미지(false image)’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진짜 북한 사회와 고립된 북한의 일부만 방문하게 하고는 마치 진짜 북한 주민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착시(錯視)현상’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대외용 진열장’이다. 유럽의 도시를 연상케 할 만큼 풍광이 수려한 평양은 ‘성분 좋은 특권층’ 말고는 살 수 없는, 외국인에게 보이기 위한 ‘특수도시’다.

▷“북이 남을 향해 핵무기를 쓸 리 없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의 책임이다”는 주장도 햇볕정책이 만든 거짓 이미지의 산물이다. “전쟁은 한반도에서 먼저 시작될 것”이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는 북한 정권을 마치 평화애호집단이라도 되는 듯이 국민을 오도(誤導)해 온 탓이다. 핵 위기 속에서 개성공단행을 강행해서는 ‘춤판’을 벌이거나, 금강산 ‘주마간산(走馬看山)’ 끝에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북의 선전선동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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