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전시작전권-FTA 회견]전문가들이 본 허실

  • 입력 2006년 8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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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연합뉴스와의 회견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대한 비판여론을 반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연합뉴스와의 회견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대한 비판여론을 반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9일 회견에서 밝힌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당위론’에 대해 많은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한국군의 실상을 모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군 통수권자가 전시작전권 문제를 국익의 득실을 냉철히 따지기보다 감정적 측면만 부각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가 “노태우 대통령 때 입안됐고 결정됐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노태우 정부 당시 외교안보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당시 정부 차원에서 입안한 것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전시작전권이 아닌 평시작전권 환수 문제였다”며 “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전시작전권 관련 발언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검증해 본다.

▽“지금 환수되더라도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우리나라가 경제 11위 대국이고, 병력으로는 세계 6위 군사강국’인 만큼 당장이라도 전시작전권을 환수해 행사할 수 있다고 노 대통령은 주장했다.

하지만 전시작전권의 환수로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한국군은 전시작전권의 핵심인 독자적인 작전계획 수립부터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한미연합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령은 “한미연합사의 핵심 임무는 각종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며, 이는 연합사가 유사시 막강한 미군 전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국 측의 지원도 소극적이 돼 한국군이 독자적인 작전계획을 세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군도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을 통해 독자적인 작전계획 수립에 노력했지만 아직은 ‘초보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지난달 “한국군의 능력과 준비 상황을 고려할 때 2010년 이전에는 사실상 환수가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다.

▽“작전권 환수 때문에 더 들어가는 예산은 아주 적은 부분이다”=노 대통령은 2003년 5월 TV토론에서 “국방부에 전시작전권 환수를 포함한 자주국방 5개년 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국방부는 지난해 9월 2020년을 목표로 한 국방개혁안을 발표했고, 노 대통령은 같은 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국방개혁안은 자주국방의 의지를 담고 있고, 전시작전권 행사로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2007∼2011년 국방중기계획에 드는 약 150조 원을 포함해 2020년까지 소요될 621조 원의 국방예산은 전시작전권 환수의 토대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고유가와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안할 때 내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9.9%씩 국방예산을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자칫 전력 증강은 고사하고 병력수만 감축돼 대북 억지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방위역량은 많이 축소돼 알려졌다”=병력수로 보면 한국군이 세계 6위 군사강국이라는 노 대통령의 주장은 ‘과대포장’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밀 유도무기와 첨단 지휘 통신체계로 치러지는 현대전에서 병력수는 전쟁 수행 능력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주한미군 추가 감축 가능성을 언급한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병력수가 아닌 전투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군의 장비 노후화와 유사시 탄약 확보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발간된 육군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육군의 노후장비 보유율이 48%를 차지하고,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2010년경에는 68%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시작전권을 환수해도 미국의 정보자산은 한국과 협력이 된다”=지난달 북한 미사일 발사 당시 미국은 해상도 10cm 급의 정찰위성과 조기경보위성(DSP)을 비롯해 한번 비행에 100만 달러가 소요되는 U-2 고공 정찰기 등으로 북한을 손금 보듯 관찰했다.

당시 수집된 각종 정보는 한미연합사를 통해 한국 정부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정찰위성으로 수집한 ‘특급 전략정보’는 선별적으로 한국에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군사 정보통은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 동맹 관계가 느슨해지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파열음이 고조될 경우 미국이 제대로 정보를 제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동맹관계가 소원해지면 대북 감시를 위한 첨단 장비도 구매하기 힘들다. 미국이 고고도(高高度) 무인정찰기(UAV)인 글로벌호크를 일본과 호주, 싱가포르에 판매한 대신 한국에만 판매를 거부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남북 간 군사협상을 할 때도 작전권을 갖고 있어야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이 부분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 왔고, 이를 이유로 예정된 남북장관급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 행사 등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겸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지냈던 이석복 성우회 안보분과위원장은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며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환수했다고 북측이 고분고분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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