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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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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사상에 젖어 시장경제적인 의식이 다소 약했을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남이 장에 가니 저도 덩달아 장에 간다’는 속담이다. 최소한 밴드왜건 효과만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실물경제를 지배해 온 모양이다. 이번 독일 월드컵을 통해 다시 확인된 역동적인 한국의 모습을 보면 이 효과는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할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근대화에서 현대화로 이어진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 경제는 소비 위축, 투자 부진, 청년실업, 중산층 붕괴, 양극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러한 국내 경제를 활성화시켜 기업들의 투자를 늘리고, 국민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장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일 것이다.
노 대통령의 핵심 정책참모들이 부동산 가격 안정과 양극화 해소를 하겠다며 땜질식으로 내놓은 처방인 이른바 ‘세금폭탄’이 올해 말부터 현실화된다. 과연 이러한 정책들이 애초에 내세운 기대효과를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과도한 세금은 조세 저항을 낳고 국민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 데는 약간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실물경제를 위축시키는 심리적 파괴력은 지대할 것이다. “세금의 대부분을 내는 사람은 상위 20%에 불과하고 80%는 세금과 무관하다”는 노 대통령의 추가 설명도 경제논리를 무시한 발언이다. 소비와 투자를 주도하는 상위 20%가 위축되면 남은 80%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퍼지고 결국 실물경기는 객관적 조건 이상으로 나빠진다. 특히 세금은 내는 사람은 크게 느끼지만 그 재원으로 혜택받는 사람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이중성이 있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쪽은 대통령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비(非)상위 80%, 그중에서도 하위 빈곤층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쟁은 국민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안겨 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국민의 90%는 그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가장 미국과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이던 정부가 이번에는 반미단체들의 과격시위에도 불구하고 협정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과거 노 대통령의 핵심 정책참모였던 사람들이 한미 FTA 반대 서명을 한다. 한편에선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 축소에 불만을 품은 인기 영화인들이 앞 다투어 일인시위를 한다. 과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핵심에 섰던 두 영화인은 노 대통령 지지 시위라도 할 만한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정말 대통령과 코드가 맞았는지, 아니면 대통령을 헷갈리게 했는지 궁금하다.
문제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서민경제는 더욱 나빠진다는 사실이다. 올 상반기 제조업 분야에서만 7만5000개 정도의 일자리가 줄어든 걸로 추산된다. 구직 자체를 포기해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 취업 단념자만도 12만 명이 넘는다. 또 꿈과 희망을 잃어 취업교육도 받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니트(NEET)’족이 8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제 우리 대통령이 경제 공식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10대 경제대국이라 하지만 1등 2등 6등에 둘러싸여 있고, 자원이 없고 내수 기반이 약해 수출주도형 경제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을. 우리의 주력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등은 세계 상위 5대국과 겹쳐 국내 기업은 세계 일류기업과 무한경쟁 중이라는 현실을. 따라서 개방화, 세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결론을. “시장보다 강한 정부는 없다”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경제 공리들을.
대통령이 경제 공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이 안정감을 되찾아 미래를 향한 희망에 동승하는 밴드왜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곽승준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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