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이후 정국’ 릴레이 인터뷰]고건 前국무총리

  • 입력 2006년 6월 5일 03시 00분


안철민 기자
안철민 기자
《5·31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후 정치권에는 정계개편과 내년 대선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정계개편 논의에는 고건 전 국무총리가 늘 ‘단골’처럼 거론된다. 더구나 그는 곧 ‘희망국민연대’(가칭)라는 단체를 발족시킬 예정이다. 본인은 한사코 정치적 목적을 띤 단체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본보는 이에 따라 4일 고 전 총리와 인터뷰를 하고 지방선거 결과와 현 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평가, 그의 향후 행보 등에 대해 소상히 들어 봤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내 고 전 총리의 개인 사무실 등에서 오찬을 겸해 3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노무현정부 평가▼

―5·31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마디로 국민이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승리라기보다 여당의 완패다. 국민은 처음에는 참여정부에 많은 기대와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그 기대와 소망에 어긋나지 않게 안정 속에서 개혁을 차분히 해야 했는데…. 낮은 자세에서 국민과 의사소통을 하고 코드와 의견이 다르면 포용하는 자세로…. 전문 능력은 보강하고, 시행착오는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한데 불행하게 참여정부가 독선에 빠졌다.”

―왜 독선에 빠졌다고 보나.

“대통령 측근이 ‘대통령은 21세기에, 국민은 아직도 독재시대 문화에 빠져 있다’는 망발도 했는데 이런 표현 하나가 독선에 빠진 것을 입증한다. 국민 통합과 사회 통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땐데 편을 가르고, 패를 나누는 등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을 적으로 뒀다.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정부 여당과 노무현 대통령 모두가 나라의 정책을 시행하는 데 낮은 자세로 소통하고 신뢰를 얻어야 했는데 그것이 미흡했다. (책임을 분리하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여당과 정부는) 동일체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느낀 점은….

“지방선거는 자치선거인데 중앙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게 지론이다. 그래서 (나는) 지방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이번에는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식민지화하고 매몰시켰다.”

―호남에서 민주당이 선전한 이유가 고 전 총리의 역할이 있어서인가.

“이번 선거에 참여 안 했으니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남 인맥이라는 것에 개의치 않나.

“우리 세대는 아버지 고향 따라가니까…. 아버지 고향 때문에 호남 출신이라고 인식되는데 다른 조건을 달거나 할 생각은 없다.”

―정자정야(政者正也·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 의미하나.

“우리 정치권이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 빠지기보다 무엇이 국민을 위해 옳은 것이고 필요한 것인지, 실사구시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 10년 내에 선진국에 꼭 진입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과제를 이뤄 내기 위해 새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6개월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맡겨진 시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민은 끝났나. 결론은 무엇인가.

“고민은 계속하면서도 나라의 미래와 나의 역할을 위한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마치게 되면 말씀드릴 기회가 올 것이다.”

▼기존 정당과의 연대▼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현 정치권은 국민의 꿈과 희망을 담아 내고 대변하기보다는 자기들 세계 속에서 편 가르기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정치를 가지고는 지금의 역사적 과제를 풀기 어렵다. 정치권이 국가의 새 성장발전 모델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는 실사구시 정신이 필요하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구상하는 주제이다.”

―7월에 발족하기로 한 희망국민연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아직 초기 단계이고 구상 단계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나라의 미래와 내 역할에 대한 구상이 끝나면 적절한 시기에 밝히겠다. 7월 말, 8월 초에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소규모 발기모임을 열 계획이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어떤 그림도 없다. 비정치인, 전문가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구성한다는 대원칙만 있을 뿐이다. 신당 창당이 아니고, 모태도 아니다(이 부분은 꼭 써 달라고 당부).”

―언제쯤 구체적 구상을 밝힐 예정인가.

“시간을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늦지 않게 밝힐 것이다.”

―그것이 대선 출마 선언인가.

“그걸 가다듬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밝히겠다.”

―기존 정당에 들어가거나 연대하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인가.

“구체적인 정치 시나리오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어떻게 하면 새 패러다임의 정치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희망국민연대를 구성해서 같이 협의해 보자는 정도다. 정파를 초월하자는 것이고, 국가 어젠다 차원의 시대적 과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선거전략 차원에서 이합집산이나 입당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기존 정당에 몸담지는 않을 것이다.”

▼희망연대 성격은…▼

―뜻을 이루려면 정치적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희망국민연대인가.

“아니다. 지금 내가 꼭 뭐를 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새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과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다.”

―대선까지 완주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결단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 열린우리당과 성향이 가까운 편인가.

“나는 중도실용주의 개혁노선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의 실패로 인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세계의 정치적 조류도 좌우 양측의 극단을 극복하고 나머지를 아우르는 제3의 길을 택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를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고 전 총리가 중도세력의 리더(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에 대해….

“그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리더라기보다는 중도세력이 연합해야 한다고 6개월간 주장하고 다녔는데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다 하겠다는 것이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이 있을 것이라며 고 전 총리에 대해 “화장실에서 웃고 있는 남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지방선거 문제를 걱정하고 고민했다. 웃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 고민하고 있는 남자였다. 웃기는 뭘 웃나. 학자들이 자기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쓴 것 같다.”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신지호 씨는 고 전 총리의 한나라당 입당을 주장하면서 “여권과 함께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배신”이라고까지 했다.

“한나라당도 나와 공통점이 있다고 하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도 나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대립적 정당 구조에서 나를 매개로 해서 공유 영역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중도통합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인가.

“분열과 대립이 아닌 상생과 통합으로 가야 한다. 차기 지도자는 국정운영 능력, 국민통합, 안정감, 청렴성, 개혁성 등 5가지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본인이 그것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생각하나.

“난 뭐…. 차기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은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론조사에서 내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기대하는 것 아니겠는가.”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거품이라는 지적도 있다.

“나에 대한 지지도는 오랜 공직생활에 대해 신뢰를 보내 주는 국민의 여론으로 받아들인다. 대통령 탄핵 때 졸지에 직무대행하면서 느꼈다. 2004년 3월 22일은 내게 가장 길고 고된 하루였다. 그 순간 외교안보를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전군에 지휘경계령을 내리고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그때 두 사람 다 자리에 없었는데, 전화 지시를 통해 국내외로 동요가 없도록 했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처음엔 지지도가 높았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선거에서 지지 않았나.

“강 전 장관이 오세훈 당선자를 불러들인 것 아닌가? 선거가 시종 여당 대 야당의 구도로 일관하다 보니 서울시의 미래에 관한 핵심적인 논의를 할 기회마저 상실돼 버렸다.”

―행정의 달인이지만 정치인 고건은 매력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나도 ‘알매남’이다. ‘알고 보면 매력이 있는 남자’라는 뜻이다.”

▼시장때 업적-사무실 운영▼

―자신의 경제 능력을 구체적으로 평가한다면….

“미래와 경제 연구모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워크숍을 한다. 그곳에 나오는 전문가들과 다양한 경제적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데 깊이 있는 토론을 할 수준은 된다.”

―남북문제에 대한 견해는….

“인도적 지원을 통해 개혁을 유도하는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는 장기적인 원칙하에서 대북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그때그때 상황논리에 의해 행동하고 있다. 북한을 실질적인 개혁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는 목표지향적인 지원 정책으로 나가야 한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세계적인 어젠다가 됐다. 우리 정부도 국군포로, 납북자 귀환 등에 대해선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연령으로 봐서 시간이 없다.”

―현 정부가 차기 대선 전략으로 획기적인 대북 제안과 개헌을 이슈화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들은 바 없지만 남북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 개헌 문제도 정략적인 차원에서 다뤄서는 안 된다. 대통령(5년)과 국회의원(4년)의 임기가 달라 매년 선거를 치르는 낭비와 불안정은 분명히 있다. 따라서 20년 만에 양자의 임기가 같은 해에 시작하는 2008년에 임기를 일치시키는 개헌은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선을 앞두고) 그 외의 권력구조 등을 바꾸는 개헌은 옳지 못하다.”

―내각제와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분단 상황인데 정권이 자주 바뀔 수 있는 내각제를 채택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대통령제를 해 왔는데 문제가 있다고 새 정치 실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견해는….

“첫째 원칙은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 둘째 원칙은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투기와 부익부 빈익빈에 대해서는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입 방식이 잘못됐다. 특히 서울 강남 한곳을 타깃으로 전국의 부동산정책이 왔다 갔다 했다.”

―본인도 종부세 대상인가.

“아니다. 단독주택은 식당 하는 사람한테 월세로 임대했다. 다른 곳에 전세를 얻어 들어갔다. 사무실 운영비도 월세로 충당한다. 일생일대의 첫 재테크이다. 월세 준 곳이 냉면집이어서 종부세 대상이 아니다. 종부세란 집과 부동산이니까. 임대료에 대한 부가세와 종합소득세 등으로 1년에 약 600만 원 정도 세금을 낸다.”

―교육평준화에 대한 견해는….

“교육기회의 균등과 교육의 수월성 가운데 지금까지는 평준화에 무게를 둬 왔다. 지금 시점에서는 사람이 경쟁력이다. 앞으로는 수월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본다.”

―서울시장 재임 시 내세울 만한 업적은 무엇인가.

“업적이 지금 땅속에 있어 잘 안 보인다.(웃음) 2기 지하철 160km 건설이 그것이다. 내부 순환도로도 그때 착공했다. 나는 대역사를 추진할 때 가급적 충돌과 파열음이 나오지 않도록 사전 정지작업을 병행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큰일이 이뤄졌는지 잘 모른다. 난지도공원도 대역사인데 그건 잘 보이지만 좀 변두리에 있어서….(웃음)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세계적인 명품 경기장으로 뽑혔다.”

▼인터뷰 패널▼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이진녕 정치부장

▽김상영 경제부장

▽최영묵 사회부장

▽김차수 문화부장

정리=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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