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도마오른 ‘천용택 前국정원장의 의혹’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이종찬(李鍾贊) 전 국가정보원장이 천용택(千容宅) 후임 국정원장 시절 자신이 국정원에 의해 ‘감청’을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천 전 원장이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천 전 원장을 둘러싼 의혹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전 원장은 1999년 10월 이른바 ‘국정원 언론 장악 문건’ 파동 당시 엄익준(嚴翼駿·사망) 국내담당 차장에게서 자신의 전화 통화가 감청됐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했다. 2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다.

국정원 차장이 요인에 대한 감청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당시 원장도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승규(金昇圭) 현 국정원장은 28일 “당시 감청이 이 전 원장의 동의 하에 이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감청’이 정당화되거나, 천 전 원장 관련 의혹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천 전 원장 재직 시절 국정원이 정치인과 기자의 통화를 엿들었다는 점은 명백해졌기 때문. 통화 상대방인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 기자가 동의했는지도 불투명하다. 문 기자가 동의하지 않았을 경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불법 감청에 해당한다.

천 전 원장의 재직 기간은 1999년 5월에서 같은 해 12월까지 약 7개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 사건의 중요한 일들이 대부분 그의 임기 동안 벌어졌다.

무엇보다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비밀도청 조직인 미림팀 도청 테이프 274개의 유출과 회수, 폐기 등이 모두 그의 재임 기간에 이뤄졌다.

이 도청 자료를 빼돌린 전 미림팀장 공운영(孔運泳·구속기소) 씨가 처벌을 받지 않고 국정원의 도움으로 사업체까지 차렸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1999년 12월 15일 천 전 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대선자금 관련 발언도 출처를 의심받고 있다.

당시 천 전 원장은 “삼성이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 사장을 통해 돈을 갖고 왔으나 받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른바 ‘X파일’에 담긴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천 전 원장은 이 발언 후 1주일 만에 전격 경질됐다. 그는 당시 “엄익준 차장에게서 들은 얘기”라고 했으나, 최근 검찰 조사를 전후해 “김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라고 말을 바꿨다.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 어디까지=국정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감청의 흔적이 일부 드러났으나 과거와 달리 무차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시기에도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요인들에 대해 불법 감청을 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감청 방식이 이전 정권에 비해 상당히 과학화됐다는 점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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