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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8월 25일 04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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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는 ‘검찰 수사’에 관한 발언=노 대통령의 정확한 발언 내용은 “1997년 대선자금과 관련해 당시 대선후보를 부르지 말라”는 것. 청와대 측은 추가 해명을 통해 “검찰에 한 얘기가 아니고 시민단체와 사회에 대해 한 얘기”라고도 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선 “(삼성의) 대선자금 제공이나 비자금 제공 의혹을 수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청와대 측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 대선자금 문제가 제기되면 준 쪽과 받은 쪽을 모두 조사해야 진실이 밝혀지는 것인데 한쪽(준 쪽)만 조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쪽을 조사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다른 쪽도 조사하지 말라는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시민단체와 사회에 대한 발언’이라는 것도 해당 사안에 가장 민감한 ‘주체’가 검찰이라는 점에서 ‘사후 변명’으로 보는 게 검찰 내 분위기다.
결국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 ‘검찰의 1997년 삼성그룹의 대선자금 제공 수사 문제에 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사들 “불편하게 느껴진다”=검찰 관계자들은 표면적으로는 한결같이 “대통령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도청수사팀 관계자도 “대통령 말씀에 대해 수사팀이 뭐라고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속으로는 부담스러워하거나 비판적인 분위기가 다수다.
검찰의 중견 간부는 “단지 불법 증거이기 때문에 수사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며 “법무부 장관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날 삼성 대선자금 수사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듯한 발언을 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노 대통령 발언 직후 해명 자료를 내고 “나의 23일 발언은 당시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천 장관은 2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도청 사건과 관련해 “만일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법에 따라 구체적 사건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할 용의도 있다”고 했었다.
▽수사팀은 어찌할까=검찰은 삼성그룹의 대선자금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불법 증거’라는 법리적인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풍’ 사건 등 다른 사건을 통해 삼성을 ‘우회’ 공격하는 방안도 모색했지만 내부에서 ‘표적수사’라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얼핏 보면 검찰에 ‘퇴로’를 열어 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 발언은 수사팀에 가해지는 새로운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검찰이 ‘법 원칙에 따라’ 삼성의 대선자금 수사를 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란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한나라 “과거사 파헤치라고 할땐 언제고”-
열린우리 “8·15 대사면 정신과 같은 맥락”▼
노무현 대통령이 24일 1997년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당시 후보들에 대한 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데 대해 여당은 환영했고, 야당은 정치적 의도를 경계했다.
이날 광주를 방문한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의 발언은 광복 60주년 대사면의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며 “진실 규명과 처벌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전병헌(田炳憲) 대변인도 논평에서 “과거사 정리는 처벌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고 용서와 화해로써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불과 열흘 전만 해도 과거를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고 해놓고서 정작 가까운 과거사인 1997년 대선은 덮고 가겠다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그동안 대선자금 수사는 대통령 지시에 의해 이뤄진 것이냐”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발언이 다중 포석을 깔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호하고 또 대통령 본인이 관련돼 있을지도 모를 2002년 대선자금 추가 수사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아보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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