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정상회담 이후]“北 핵포기땐 보다 정상적 관계 가능”

  • 입력 2005년 6월 13일 03시 09분


盧대통령, 美안보보좌관 접견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10일 오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장소를 옮겨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왼쪽에서 두 번째)과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워싱턴=석동률 기자
盧대통령, 美안보보좌관 접견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10일 오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장소를 옮겨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왼쪽에서 두 번째)과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워싱턴=석동률 기자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 때 북한에 제안한 ‘핵 포기 시 단계적 지원 로드맵’이 유효하다고 강조했을 뿐 새로운 유인책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갔고 북한에 대해 어느 때보다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이 지난 1년간 열리지 않고 있는 6자회담에 북한이 나오도록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보다 정상적인 관계’ 등 주요 대북 메시지의 의미와, 노 대통령이 밝힌 한미 간의 ‘한두 가지 작은 문제’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펴본다.》

▽‘보다 정상적인 관계(more normal relations)’ 가능하다=부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북-미 간의 보다 정상적인 관계’는 북-미 수교의 전(前) 단계쯤으로 풀이된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테러지원국’과 ‘불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고 대북 수출이 금지돼 있는 전략적 물자의 수출 허용을 포함해 전면적인 경제교류가 이뤄지는 단계를 뜻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 발언이 북-미 수교를 뜻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현 단계에서는 수교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평가가 안 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수교 문제는 핵 문제가 해결되고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든 규범을 북한이 지킬 때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는 게 반 장관의 추가 설명이었다.

보다 정상적인 관계에 대해선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3차 6자회담 시 제의한 방안에 기초하여’라고 단서를 붙인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내놓은 제안은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다자(多者) 안전보장, 에너지 지원, 경제제재 해제 및 테러지원국 명단에서의 제외 논의 등을 포함한 단계적 로드맵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핵 포기의 수순을 밟으면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등 정상적 관계를 위한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 핵 문제가 해결되면 수교 등 모든 게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핵 문제 해결이 수교 논의의 단초가 될 수는 있으나 종착역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래도 북한이 6자회담에 안 나오면=두 정상은 북한이 끝내 6자회담에 응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논의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 장관이 “그런 내용이 알려진다든가 할 경우엔 6자회담 재개에 유리한 분위기가 안 된다”고 애매하게 피해간 것이 증거다.

실제로 양국 간 실무 협의에서는 최악의 상황, 유동적인 상황, 사태가 호전되는 상황에 각각 대비하는 대응시나리오를 논의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는 중국을 통한 경제적 압박,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정 등 단계적으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는 강경책이 거론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언제, 어떤 내용의 대응책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해선 두 정상 간에 다소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한 대목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부시 대통령이 굳이 인권 문제를 짚은 목적은 고도의 인내심을 발휘했는데도 북한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인권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 체제와 정권의 문제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동북아균형자론=노 대통령은 회담 기자회견에서 한미동맹과 관련해 “한두 가지 작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북한 급변사태의 군사적 대비책인 ‘개념계획 5029’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이 문제를 잠시 거론했으나 앞으로 장관급 실무 협의에서 논의키로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 문제의 경우 사전 동의 없이 주한미군을 다른 지역에 투입할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에 대해 미 측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양국 간에 논란을 일으켰던 동북아균형자론은 거론되지 않았다는 게 반 장관의 설명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중요한 두 동맹국”이라며 최근의 한일 관계에 관심을 표명했고, 노 대통령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동북아균형자론의 배경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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