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정부질문]또 뻣뻣한 李총리, 따라하는 鄭통일?

  • 입력 2005년 6월 8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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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왼쪽)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과 일전을 겨뤘다. 이 총리는 의원의 질의에 “국회가 정책을 논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훈계조’로 말하는 등 ‘강성’을 숨기지 않았다. 정 장관도 의원의 발언을 “백해무익한 얘기”라고 질타하는 등 거침없는 태도였다. 김경제 기자
이해찬 국무총리(왼쪽)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과 일전을 겨뤘다. 이 총리는 의원의 질의에 “국회가 정책을 논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훈계조’로 말하는 등 ‘강성’을 숨기지 않았다. 정 장관도 의원의 발언을 “백해무익한 얘기”라고 질타하는 등 거침없는 태도였다. 김경제 기자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차떼기당’ 발언으로 한나라당과 정면충돌했던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7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다시 한나라당과 부딪쳤다.

한나라당 김정훈(金正薰) 의원이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두 아들에 대한 김대업 씨의 ‘병풍 조작 의혹’에 이 총리가 연루된 것 아니냐는 등 공격적인 질문을 퍼붓자 이 총리는 분을 삭이다가도 “나는 공작정치 안 한다”고 고성으로 맞받아치는 등 격하게 반응했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도 ‘한반도 위기설’과 관련한 의원의 질문에 “백해무익한 얘기는 하지 말라”는 취지로 반박하는 등 거침없는 태도를 보였다.

야당 의원의 자극성 질문도 문제이지만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국민의 대표를 면박하는 듯한 정부 측의 태도가 계속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정부질문장 분주한 지도부
7일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옆에서 정세균 원내대표가 한 의원에게 질의 내용을 주문하고 있다(왼쪽).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로부터 원내대책을 보고받고 있다. 김경제 기자

▽“비아냥거리지 마라”=오후 질문에서 김정훈 의원이 “이 총리가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장으로 ‘병풍 공작’ 등에 관여한 것 아니냐”고 말한 데서 신경전은 시작됐다. 이 총리는 굳은 표정으로 “그런 방식(공작)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2002년 가을 이 총리의 ‘병풍 유도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이 총리의 심기를 자극했다. ‘병풍 유도 발언’은 “검찰이 이회창 총재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강력 수사할 수 있도록 여당 의원이 국회에서 관련 발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누군가가 내게 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이 총리는 이로 인해 여권에서 반발을 산 일이 있다.

김 의원은 이를 비틀어 “당시 천용택 민주당 의원이 ‘(이 총리를) 돌로 치고 싶다’고 했다는데 이는 이 총리가 공작정치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이 총리는 눈을 치켜뜨며 “(김 의원이) 질문하는 것을 보니 정치를 선한 마음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하고 싶다”며 일갈했고, 김 의원은 “국민을 대표해 하는 질문에 대해 무슨 충고 운운하느냐”고 고함을 쳐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김 의원은 “당시 이 총리에게 ‘병풍 유도 발언’을 요청한 사람의 신원을 공개하라”, “검찰의 병풍조작 사건 수사에 이 총리가 응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질문을 계속했다.

이 총리가 “나는 참고인 신분이어서 검찰에 반드시 출두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소환 불응으로) 50만 원의 과태료를 냈다”고 답변하자 김 의원은 “자∼알 하셨습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이 총리가 폭발했다. 그는 김 의원을 노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비아냥거리지 마십시오”를 두 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이 총리가 최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허리 이상설’을 거론했다가 청와대로부터 빈축을 샀던 사실을 들어 “대통령과 골프를 해 보니 대통령 허리가 괜찮으냐”고 물었다. 이 총리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사이 여야 의석에서도 “총리, 한번 해보자는 거야”, “김 의원 저 놈이…”라는 등 막말이 오갔다.

잠시 본회의장을 빠져 나가 분을 삭인 뒤 다른 의원 질문에 대한 답변에 나선 이 총리는 “국민을 현혹시키고 왜곡하는 행위가 단상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이를 데 없다”며 “인격적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능수능란하게 넘기면 좋겠지만 직선적 성격이라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백해무익하다”=정동영 장관도 이날따라 민감했다. 한나라당 유정복(劉正福) 의원이 7월 한반도 위기설을 거론하며 “북핵 문제가 대화로 풀리지 않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느냐”고 묻자 정 장관은 “백해무익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평화적으로 안 될 경우를 상정해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유 의원이 “7월 위기설이 터무니없는 것이냐”고 묻자 정 장관은 “6월 위기니 7월 위기니 하는 밑도 끝도 없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논의된다는 것을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한다. 국회에서만 이런 얘기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창 달아오르던 논쟁은 유 의원이 돌연 지역구(경기 김포) 현안을 질의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유 의원은 “김포 파주 고양 강화를 잇는 통일안보 관광벨트 개발사업이 필요한데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고 정 장관은 “유 의원의 지역구인 그곳에서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장관이 의원을 비꼬는 듯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野 “내각-청와대 보좌진 총사퇴해야”▼

7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각종 의혹 사건과 경제난 등 최근의 국정 난맥상을 강하게 질타하고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한나라당 유정복(劉正福) 의원은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과 행담도 개발 의혹 등으로 인한 국정 난맥을 쇄신하기 위해 내각과 청와대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형준(朴亨埈) 의원은 “현 정권은 이미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맞고 있다”며 “의욕은 넘치지만 실력이 없거나 국정보다는 대권에 뜻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답변에서 “한국철도공사가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한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하고 행담도 개발 의혹에 대해서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가 자기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내각 총사퇴를 거론할 정도로 현 상황이 어려운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총리는 2002년 대선 당시 김대업 씨의 병풍 조작 사건과 관련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나 억울한 사안이라고 하면 과거사를 밝히는 차원에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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