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외교 ‘난타전’

  • 입력 2005년 3월 31일 19시 23분


한국과 일본의 고위 당국자가 상대국 지도자의 발언을 비판하고, 반박하는 사태가 거듭되면서 외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규형(李揆亨)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31일 논평을 통해 “지난해 12월 이부스키(指宿) 정상회담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가급적이면 돌출 발언과 같은 사고가 없기를 희망하며 역사교과서 문제나 신사 참배 등에 대해 일본 측이 결단을 내려주면 해결이 쉬워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 자리에는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이 배석하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최근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비판한 것과 관련해 마치무라 외상이 지난달 30일 “정상끼리 무릎을 맞댈 때는 말하지 않고 그런 형태로 표현한 것이 아쉽다”고 비판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도 31일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분명히 야스쿠니신사 관련 언급을 했다”며 “마치무라 외상의 말은 사실관계가 전혀 틀린 얘기”라고 반박했다.

정부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정상회담에서의 비공개 대화 내용을 공개해 일본을 질타한 것은 한일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외교 전면전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치무라 외상이 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은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18일 고이즈미 총리를 비판한 데 대한 맞대응으로 분석된다. 양국 고위 당국자 간의 연쇄 충돌이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 것.

정부의 한 관계자는 또 지난해 정상회담의 준비과정 및 합의문 발표 경위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한일 정상회담 며칠 전인 지난해 12월 11, 12일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극비리에 일본을 방문해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당시 관방 부장관보(현 외무성 사무차관) 등 고위인사 3명을 만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전했다. 이 차장은 정상회담에서 ‘불행한 과거사를 연상시키는 양국 지도자의 언행이 자제돼야 한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는 합의를 발표하자고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한편 정부의 강력 대응에는 청와대의 의중이 깊숙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 사태 해결이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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