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변경희]복지업무 지방이양 신중해야

  • 입력 2005년 3월 7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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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들어 ‘지방분권’은 시대적 화두가 됐다. 중앙정부가 추진해 오던 많은 사업이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도 많은 업무가 분권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의 변화는 우려를 동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경제는 마치 내일모레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할 것처럼 자신에 차 있다. 일부 전자통신 분야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세계 최고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제지표에 비해 소득의 양극화와 절대빈곤층 및 차상위 계층의 증가 등 사회복지 지표들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안전망 구축에 더 많은 재정 투입이 필요한 것이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문제는 현 정부의 지방이양 정책으로 이젠 그런 업무와 함께 관련 재정 문제도 상당 부분을 지방자치단체가 떠맡아야 하는 실정이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방정부에 무슨 재정 능력이 있는가.

올해부터 많은 사회복지 관련 사업들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었다. 보건복지부 소관의 국고 보조 사업만 해도 지방으로 이양된 사업은 67개로 전체의 48.6%, 금액으로는 12%에 이른다. 이 중 장애인복지사업과 관련된 것이 비중이 가장 크다.

담당 부서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복지행정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넘기는 것은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해 개관한 경기 수원시 영통사회복지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회복지의 지방 이양에 대해 기대를 거는 측도 있다. 지역 주민의 다양한 복지 욕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지역 주민이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며, 지역에 맞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여건은 우려를 갖게 하는 측면이 더 많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인기위주 사업 추진과 님비 현상 등으로 복지 분야는 다른 사업에 비해 투자의 우선순위가 밀릴 가능성이 크다. 지역 간의 재정 불균형이 복지서비스의 수준차를 낳을 수 있는 점도 문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현재 사회복지서비스를 담당할 부서나 기구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사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복지업무는 보건복지부 노동부 행정자치부 교육인적자원부 여성부 등에 분산되어 있어 행정의 비효율성을 초래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치밀한 준비 없이 복지행정을 덜컥 지방으로 넘기면 더욱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해부터 전국의 9개 시군구에서 사회복지사무소가 시범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운영에 그치고 있다. 현재로선 이를 보완하고 확대 설치할 전망이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1인당 생활보장 담당 가구는 약 161가구로 일본의 67가구, 벨기에와 노르웨이의 60∼100가구 등에 비해 배 이상 많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는 복지업무에 대한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업무 이양이 계속된다면 일선 공무원들의 업무와 책임만 가중될 뿐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그보다 정부와 국회는 복지 대상자들이 더 이상 정책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복지의 지방 이양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전폭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사회복지사업의 지방 이양은 노무현 정부의 분권화를 위한 수단이 아닌, 지방자치의 효율성과 민주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변경희 한신대 교수·재활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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