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용석]北엔 ‘NO’라고 말 못하는 정부

  • 입력 2005년 3월 6일 18시 09분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은 북한에도 ‘NO(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에 ‘NO’라고 말하면서도 북한에는 분명한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핵폭탄을 보유했다고 성명을 발표한 상황에서도 이런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한 지 15일이나 지난 2월 25일의 국회 국정연설에서도 북한에 대해 ‘NO’란 말을 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차분히 대처해 나가겠다”는 원론적인 방침만 밝혔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이날 연설에서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할 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미국에는 엄격하지만 북한에는 너그러운 자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국정연설이었다.

2년 전 미군 정찰기가 공해 상에서 북한 전투기들에 의해 강제 착륙을 하도록 요구받았을 때도 노 대통령은 미국 측에 “너무 지나치게 나가지 말 것”을 촉구했지만 북한에 대한 항의는 없었다. 그는 미국 일각에서 북한 핵과 관련해 대북 봉쇄론이 제기되자 “대북 봉쇄는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북한 핵무기 보유를 지적했을 때도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거듭 밝혔다.

반면 북한이 남한에 뭔가를 요구하고 나서면, 거절보다는 대체로 ‘YES(예)’로 부응하는 편이다. 남한의 시민단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과 인공기를 훼손한 데 대해 북한이 항의하며 사과하라고 하자 노 대통령은 다음 날 ‘유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비료 50만 t을 요청한 데 대해서도 “핵 보유를 선언한 터이므로 보내 줄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인권문제 제기를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선 할 말을 하지만 북한에는 그렇지 않다. 이런 자세는 ‘자주 외교’를 강조하면서도 미국에만 그런 주장을 할 뿐 북한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나쁜 행동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해 결국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그에게 남한을 얕잡아 보게 하는 화를 자초할 수 있다.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YES’ 의식을 불어넣어 주고, 대미 관계에선 부정적인 인식만 키워 줄 수 있다.

‘NO’라고 말할 수 없는 대북 유화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할 수 없다. 남북 간의 평화도 정착시킬 수 없다. 오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신감과 야욕만을 키워 줄 뿐이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상대로 한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책이 평화를 얻지 못했고, 히틀러로 하여금 연합국들을 얕잡아 보게 하여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도발을 자초했던 역사적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체임벌린의 유화책처럼 불상사를 불러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정용석 단국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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