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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2월 14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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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의원은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헌재는 군사정부 시절인 1987년 개헌을 하며 생긴 기형적인 기관으로 세계 각국은 헌재 없이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대법원이 한다”며 헌재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탄핵, 신행정수도, 호주제 폐지 등 우리 사회의 주요한 정책현안들이 모두 헌재를 경유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삼권분립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14일 중진 의원들의 만류로 일단 이런 주장을 거두었지만 이후 기자와 나눈 전화통화에서는 “젊은 의원들 대부분은 해야 한다고 하던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헌재 재판관 9명 중 3명은 국회가, 3명은 대통령이 지명한다는 점에서 헌재 구성은 이미 정치적이다. 헌재가 실제 일부 사안에서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며 이 의원의 주장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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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가 아닌 정치적으로 판결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생각은 최근 이부영(李富榮) 전 당 의장 등 여당 의원들에 대한 검찰의 잇단 수사 착수와 법원의 당선 무효형(선거법 위반 벌금 100만 원 이상, 그 밖의 일반 범죄 금고 이상의 형 확정 시) 선고가 이어지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날 이화영(李華泳) 의원까지 미리 배포한 대정부질문 발언 자료를 통해 “편파적인 판단이나 자의적인 법해석으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며 사법부를 간접 비난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 이원은 실제로 이 같은 내용의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정면충돌은 피할 듯=14일 오전 여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은 이석현 의원의 헌재 폐지 주장을 만류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일부 의원의 전화 설득에 이 의원은 “내 소신이다”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본회의 직전 임채정(林采正) 당 의장까지 직접 나서 설득한 뒤에야 발언을 막을 수 있었다.
여당 고위관계자는 “초선도 아니고 3선인 이 의원이 그 같은 발언을 하면 자칫 당의 공식 입장으로 비칠 수 있다. 가뜩이나 지금도 헌재와 관계가 껄끄러운데…”라며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우선 2, 3심 재판이 진행 중인 의원들만 10명에 이르는 것이 당 지도부엔 큰 부담이다.
실현성이 낮은 헌재 폐지 주장으로 법조계를 자극하거나 정치적 피아(彼我) 구별로 법조계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일 경우 오히려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또 자칫 법조계 인맥이 두꺼운 한나라당의 공세로 되돌아 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중진들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대해 당내 소장강경파 의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아 이 같은 기조가 얼마나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4일 열린 여당 의원 세미나에서 초선의원들은 중진들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여당의원들의 사법부 때리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휴화산인 셈이다. 여당 관계자는 “법조계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는 4월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가 당선된 후에나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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