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우 교수 특별기고]韓-日 어제의 역사 그리고 내일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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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우 교수
한영우 교수
올해는 묘하게도 한일관계에서 잊을 수 없는 세 가지 큰 사건이 겹쳐진 해이다. 을사늑약(乙巳勒約) 100년, 8·15광복 60년, 한일협정 40년이다. 비극의 시작은 을사늑약이다. 국권을 총괄하던 황제의 서명 날인도 없는 을사늑약을 조약이라고 강변하면서 주권을 거의 박탈하고, 그 불법성과 무효를 세계만방에 호소하던 황제를 강제로 밀어내기 위해, 단순히 대리청정을 명한 순종을 협박하여 1910년 합방을 선언해 버렸다. 그러므로 이른바 한일합방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이 칼을 앞세워 우리를 괴롭힌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임진왜란이 그렇고, 왜구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 왜 미리 막아내지 못했느냐는 자책이 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책에는 본질을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현주소는 두 개의 상반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본 보통사람들 사이에서 ‘용사마’ 열풍이 불면서 일본 관광객이 용사마의 혼을 찾아 이 땅에 밀려들고 있다. 아마 용사마 신사(神社)가 일본에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 경제효과가 2조 원이 넘는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신사가 많은 일본에서 신사의 주인공은 상당수가 고대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문화전파자 혹은 정치지도자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쩌면 용사마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지금 ‘용사마 붐’만 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2차대전 전범자를 제사하는 신사 참배를 계속하고 있고,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정치인의 발언이 꼬리를 잇고, 그렇게 씌어진 국수주의적 역사교과서가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그 뒤에는 날로 증강되고 있는 자위대의 군사력이 버티고 있다. 다시금 칼 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거시적으로 보면 한일관계의 본질은 붓과 칼의 경쟁이었다. 붓과 칼이 부딪치면 먼저 꺾이는 것은 붓이다. 그러나 궁극에 가서는 붓이 칼을 이긴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바로 그런 역사의 정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아닌가. 근대 서양인들이 일본을 ‘무사의 나라’, 한국을 ‘학자의 나라’로 표현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붓 문화가 일본의 고대를 화려하게 수놓아 ‘구다라 나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백제인이 만든 것이 아니면 물건다운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왜구나 왜란 때의 왜군이 문화재 약탈에 열성적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후기 통신사도 용사마에 못지않은 스타였다. 통신사의 글을 받는 것은 일본 지식인의 평생소원이었다. 통신사가 한번 가면 일본 열도는 흥분의 도가니로 변하고 귀족들의 패션이 바뀌었다. 고급문화의 한류 열풍이 분 것이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사와 유키치도 정한론(征韓論)을 부르짖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집집마다 글을 읽고 있는 조선을 배우자고 주장했다. 칼싸움이나 즐기는 일본인의 습속으로는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영국이나 서양 열강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한국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자존심의 파괴에 주력했다. 문화적 열세를 군사적 경제적 우위로 해결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수주의를 반복해 왔던 것이다. 그것이 8세기의 ‘일본서기’요, 18세기의 ‘국학운동’이요, 메이지시대 이후의 ‘식민주의 역사학’이다. 일제강점기를 평가함에 있어서 경제만을 가지고 발전 운운하는 것은 편협한 접근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용사마 열풍이 우리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 반작용이 군사대국화와 국수주의로의 회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역사가 또다시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면, 결과는 두 나라의 불행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역사의 오랜 경험과 현실의 전개를 놓고 판단할 때, 한일 두 나라의 과제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칼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약점을 극복해야 하지만, 일본열도를 수없이 열광시킨 한류 열풍의 문화적 저력이 지닌 소중한 전통과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의 지도층은 경제적, 군사적 우위로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착하고 순수한 일본 보통사람들의 정서와도 배치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재 우리의 정치지도층이 보이는 조급성이다. 과거 청산을 일제강점기까지 소급하는 것은 이제 역사학의 영역이지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광복 60년간 우리 역사학이 해온 것이 일제강점기 청산이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된 정신적 힘이 된 것이다.

역사는 창업기에 할 일과 수성기(守成期)에 할 일이 따로 있음을 가르쳐 준다. 창업은 혁명적 개혁을 필요로 하고, 수성은 사회통합을 위한 재정비를 필요로 한다. 혁명적 광복이 60년을 지난 지금은 수성기임에도 불구하고 창업주처럼 급진적 개혁을 서두르면 국민이 불안하고 사회 통합이 저해된다. 그것은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북한의 태도도 우리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강성대국과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북한의 노선은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국제적 고립만 자초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부드럽게 나갈 때 북한도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에는 태평성대가 없다. 그러나 역사의 총체는 희망을 준다. 우리는 붓을 사랑하는 문화국가로 살아왔고, 그래서 희망이 있다.

▼한영우(韓永遇·66) 교수 약력▼

△서울대 국사학과 학사·석사·박사(1957∼1981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1970∼2003년)

△서울대 규장각 관장(1992∼1996년), 인문대 학장(1998∼2000년)

△현 서울대 명예교수 및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주요 저서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조선시대 신분사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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