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사공 많아 航路잃는 경제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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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부대 깜짝 방문과 파격 스킨십은 노무현 브랜드 ‘감성 마케팅’의 히트작이다. 찡한 장면을 보면서 ‘대통령의 선택엔 역시 고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 수령 체제와 한 배를 타려는 듯, 미국과는 정을 떼려는 듯 ‘확 나가 버린’ 자신의 발언에 실망한 민심과 미국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라크 파병 반대파의 곱지 않은 시선도 걸렸을 것이다.

선택 카드는 하나가 아니었다. 유럽에서까지 미국을 치켜세우고 한미동맹을 강조한 뒤에 자이툰부대를 찾아갈 수도 있었다. 정반대로 친북 극미(克美) 발언을 고수하면서 자이툰부대도 외면할 수 있었다. 결국 대통령은 그 양쪽의 절반을 조합했다. 대미 우호 발언으로 일관하면서 자이툰부대는 비켜 가는 선택도 가능했다.

▼중구난방에 左로 기운 정부 여당▼

이번 언행 교배의 결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뭘까. 대통령의 선택에 대한 만족과 불만, 신뢰와 불신, 지지와 반대의 합산 값을 매기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과 정권의 득실도 불분명하지만, 궁극적으로 국익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내외치(內外治)의 종합판인 외교안보 말고도 국정 전반이 대통령에게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중에 발등의 불이 경제다.

대북 대미 관계 발언과 자이툰부대 방문에서 보여 준 것처럼 대통령은 경제에서도 ‘상충(相衝)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개혁과 성장, 분배와 성장, 평등과 경쟁, 친노조와 친기업, 반시장과 친시장, 국가 주도와 기업 주도, 장기주의와 단기주의 사이에서 때로는 왼쪽 깃발을 들고, 때로는 오른쪽 깃발을 든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통령은 개혁, 분배, 평등, 시장견제형 국가 주도에 무게를 더 싣는 듯하다.

대통령 리더십 하에 있는 정부 여당 내 힘의 균형도 같은 방향으로 깨져 있고, 대통령 개인보다 더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대통령비서실과 각종 위원회, 그리고 여당에 포진한 386은 특히 그렇다. 이들 뒤에선 의원 보좌관, 운동권 단체 핵심 간부 등 386 동지들이 엄호하고 있다. 대통령 코드와 386 코드는 쌍방향 관계 같다.

현실로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나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을 극복하지 못한다. 경제부총리의 별칭인 ‘정부 경제팀장’은 허울뿐이다. 적잖은 경제부처 정통 관료들은 ‘청와대 코드그룹의 심부름이나 하고 있다’고 스스로 비하할 정도다. 여당의 경제정책 당론을 정하는 데서는 관료 출신 ‘실용파’가 운동권 출신 ‘개혁파’에 판판이 깨지고 잠복 상태다.

대통령의 기업 칭찬이 러시아 미주 아시아 유럽 순방에서 시리즈처럼 이어졌다. 하지만 자이툰부대 방문만큼의 감성 마케팅 효과는 없다. 오히려 “그 양반, 말뿐이잖아요”라는 냉소가 기업계를 덮고 있다. “그토록 읍소까지 했는데 토씨 하나 안 고치고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시켰잖아요. 기업도시법은 또 뭡니까. 그런 법을 뚫고 기업도시 만들 수 있겠어요?”

이 정책기획위원장은 “참여정부는 부동산정책에서 과거 정부들의 온탕냉탕 전철을 결코 밟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부자와 강남 잡는 ‘냉탕 일관성’을 지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 여당의 기업정책은 ‘말로는 온탕, 법으로는 냉탕’이다.

▼상상력 넘치는 경제팀 개편을▼

문제는 결과다. ‘개혁으로 성장을 견인하고, 성장과 분배를 함께 이루며, 고루 잘사는 나라’는 이 순간까지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 보여 주고 경제 주체들이 움직이도록 하는 데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다. 시장과 기업과 민생은 이런 ‘표어 비전’에 감동도, 희망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이 고도의 상상력이다. 어떤 사람들을 과감히 버리고, 어떤 사람들을 택해서 힘을 실어 줘야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또한 대통령 자신이 성공할 수 있을지 상상하고 결단할 시간이다. 지금처럼 이쪽저쪽 다 끌어안고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라고 해 봐야 계속 죽도 밥도 못 만들고 말만 춤출 것 같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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