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인줄 알았더니 정보원”… 한국行 정보 캐내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8시 27분


25일 오전 11시경.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일본학교에 진입하기로 한 탈북자 16명이 다롄역 앞에 집결했다. 브로커 이모씨(39)와 ‘점조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틀 전 “함께 행동하겠다”며 접근했던 여성 2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불통이었다.

이씨는 일단 진입을 강행하기로 하고, 탈북자들을 버스에 태운 뒤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일본 학교 앞에는 이미 중국 공안들이 깔려 있었다. 정보가 새나간 것이다.

순간 이씨의 머리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여성 2명의 이상한 행동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이씨가 안내한 안가(安家)를 마다하고 “호텔에서 자겠다”며 독자행동을 고집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어디로 진입할 것이냐”는 것뿐이었다. 탈북자들이 진입 전 걱정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의문의 여성들’에 의한 피해는 또 있다. 8월 13일 한국거주 탈북자 오모씨(43)의 경우. 그는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에서 “한국행을 원한다”는 두 탈북여성의 전화를 받고 식당을 찾았다가 공안에 체포됐다.

지난해 12월 귀국한 탈북자 이모씨(36)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 탈북여성이 ‘사촌오빠’ 2명과 함께 한국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사정하더군요. 그를 브로커에게 소개해주는 과정에서 체포됐습니다. 조사 담당자는 그 여성의 ‘사촌오빠’라고 자칭한 사람들이었는데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소속이 중국 안전국과 변방대(국경경비대)였습니다. 함정수사였지요.”

중국에서 1년6개월간 복역한 뒤 풀려난 이씨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탈북자 체육대회에서 문제의 여성을 목격했다. 그러나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의 여성 정보요원과 중국 공안에 고용된 탈북여성들이 탈북자들을 노리고 있다. 탈북자들은 이들을 ‘기생여단’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음식점, 노래방, 유흥업소에 위장 취업해 탈북자 동향을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26일 베이징에서 탈북자 65명이 체포된 것도 ‘기생여단’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30대 중반의 탈북자 김모씨는 “선양(瀋陽)시 서탑가의 조선족백화점 뒤에 북한에서 파견된 20, 30대 여성 12명이 살고 있다”며 “이들은 평안북도 보위부 반탐(정보)처 해외반탐과 소속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생여단’ 요원들은 활동성과에 따라 중국에서 번 돈으로 북한에서 장사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다고 한다.

중국 공안도 체포된 탈북여성과 조선족 여성을 앞세워 탈북자를 색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최모씨(27·여)는 “공안에 체포됐을 때 탈북자 색출에 협조하면 북송을 면하게 해준다는 회유를 받았다”며 “체포에 협조하면 탈북자를 돕는 사람에게 부과되는 벌금(보통 5000위안· 약 64만원)의 10%를 준다고도 했다”고 증언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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