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국보법 폐지 발언]“법리적으로 얘기할 게 아니라니…”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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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왼쪽)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MBC TV ‘시사매거진 2580’ 500회 특집 ‘대통령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경제와 과거사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박경모기자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MBC TV ‘시사매거진 2580’ 500회 특집 ‘대통령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경제와 과거사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관련 발언에 대해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법조계는 대체로 “대통령으로서 자제하면 좋았을 발언”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잇따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이 대통령을 자극한 것 같다는 시각도 있었다.

▽현직 법조계=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통령이 ‘법리적으로 얘기할 게 아니다’라고 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할 대통령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행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 대통령이 이 체제를 유지해 온 법을 악법으로 모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의회를 장악한 대통령이 사법부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소신대로 하겠다는 것 같아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는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같은 사법부 최고 기관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모양새는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또 “행정기관의 수장인 대통령이 입법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폐지 발언을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도 “정치적 고려 때문에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공안계통의 한 검찰 간부는 “대통령의 발언은 법의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의 다른 판사는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라며 “사실 국보법이 이제 변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회의 논의를 거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재야 법조계=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헌변) 이승환(李承煥) 변호사는 “낡은 유물을 폐기한다는데 폐기라는 것은 용도가 없을 때나 쓰는 말”이라며 “지금 국보법을 없애는 것은 칼을 칼집에 넣는 것이 아니라 칼을 부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 김갑배(金甲培) 법제이사는 “남북관계 변화 등을 고려해 폐지가 마땅하며 국보법이 없어도 국가안보에 지장이 없을 듯하다”면서 “사법부는 이데올로기적인 접근,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미래와 긴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한국자유총연맹 장수근(張秀根) 홍보매체본부장은 “헌재에 이어 대법원까지 국보법 존치가 필요하다고 밝힌 마당에 대통령이 폐지를 말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의 발언이 행여 국민을 분열시키지는 않을지 우려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반면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박래군(朴來군) 공동운영위원장은 “헌재나 대법원의 판단이 답답했는데 대통령이 제대로 이야기해 줘 환영한다”며 “이번 기회에 열린우리당도 당론을 확실히 정하고 국보법 폐지를 위해 국회가 빨리 서둘렀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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