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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1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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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의 책임은 아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17일 원내대표단회의에서 신기남(辛基南) 의장의 부친이 일제강점기에 헌병 오장(伍長)을 지낸 사실이 확인된 것과 관련해 신 의장을 엄호하고 나섰다.
천 대표는 특히 “친일진상규명법은 연좌제를 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신 의장 사퇴론을 일축했다.
선대(先代)가 잘못한 일에 대해 아들 또는 손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연좌제가 민주법치 국가에 있어서 안 된다는 그의 말은 분명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 이 같은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왔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3월 24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친일파의 딸’ ‘유신독재 주역의 딸’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표를 부친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결부시킨 정치적 공세였다.
박 대표가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취임한 지 하루 만에 시작된 ‘박정희-박근혜 묶어 때리기’는 과거사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열린우리당이 즐겨 쓴 대야 공격 방식이었다.
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열린우리당 김희선(金希宣) 의원이 독립군이었던 고(故) 김학규(金學奎) 장군의 후손임을 자랑해오다 김 장군과 본관이 다른 것이 드러나 곤욕을 치른 일도 시사적이다. 그가 혹시 조상의 공(功)을 ‘오늘에 되살려’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잘못은 감춘 채 잘한 부분만 강조하고, 남의 조상이 저지른 허물은 그 후손에게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과거사 진상규명이 이루어진다면 그 순수성과 공정성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 작업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과거사 규명에 이중 잣대를 적용할 경우 이 역시 준엄한 역사의 심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박성원 정치부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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