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저주의 굿판’ 주장 진실인가…보도 내용과 비교

  • 입력 2004년 7월 12일 18시 55분


《‘청와대 브리핑’내용…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1977년 서울시 연두보고에서 행정수도 구상을 밝히자 두 신문은 낯부끄러울 정도의 적극 지지 입장을 앞다퉈 밝혔다. (중략) 당시 보도 어디에도 ‘영도자의 영단’ 앞에서 감히 임시행정수도 건설의 당위성이나 이전비용, 시기나 규모, 수도권 공동화, 안보상의 문제, 국민적 합의 여부 등을 따져보는 내용은 없었다. 스트레이트에서부터 해설, 사설, 전문가 기고, 특집기회 등에선 지지 여론 조성에 필요한 찬사가 주조였다.》

청와대가 9일자 ‘청와대 브리핑’에서 ‘동아·조선은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란 글을 통해 1977년 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시행정수도 발표 당시 동아일보 보도와 사설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브리핑’은 “박 전 대통령이 임시행정수도 구상을 밝히자 동아 조선일보가 ‘낯부끄러울 정도의 적극적 지지 입장’을 앞 다퉈 밝혔다”고 비난했다. 이 글은 이어 “당시 보도 어디에도 ‘영도자의 영단’ 앞에서 감히 임시행정수도 건설의 당위성이나 이전비용, 시기와 규모, 수도권 공동화, 안보상의 문제, 국민적 합의 여부 등을 따져보는 내용은 없었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77년 2월 10일 박 전 대통령이 ‘임시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발표한 뒤 △사설 △해설기사 △전문가좌담 △기획연재 등을 통해 임시행정수도 건설의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광범위하게 다뤘다. 이에 따라 ‘청와대 브리핑’의 지적은 거짓으로 판명났다.

동아일보가 임시행정수도에 대해 제기한 비판은 현 정부의 수도 이전 정책에 대해 지적한 문제점들과 대동소이한 내용들이었다. 동아일보는 당시나 지금이나 수도 이전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점에서 국민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일관된 논지를 펴왔다.

‘청와대 브리핑’의 지적과는 정반대로 당시 동아일보는 유신독재라는 엄혹한 정치현실에도 불구하고 정책 비판과 여론수렴이라는 언론의 본분을 다했다. 아울러 박정희 정부는 독재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의 이 같은 비판을 상당부분 받아들여 그 후 정책결정에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적 합의=동아일보는 2월 12일부터 7회에 걸쳐 기획 시리즈 ‘새 서울 예진(豫診)’을 1면에 연재했다. 14일 게재된 시리즈 2회분 ‘어디로 무엇을 옮기나’에서는 “정부도 서두르지 말고, 공청회나 다른 형식으로라도 있는 중지를 다 모아 차분하게 밀고 가는 자세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며 국민적 합의 절차를 밟을 것을 촉구했다.

19일 게재된 시리즈 7회분 ‘민심 저류 깊이 파악을’에서도 국민적 합의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이 기사는 “서울 북부의 토지와 주택 가격이 떨어지고 그와 관련해 소외감이 커져 불안 불만이 자란다면 ‘지리’ 못지않게 ‘인화’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전 비용=동아일보는 발표 이튿날인 11일자 3면 기획기사 ‘새 수도가 안은 문제점’에서 재원 조달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 기사는 “임시수도 건설비용은 거의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를 것”이라며 “올해 시작된 4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도 10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외자가 필요하고, 내자 동원도 난관에 부닥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12일자 4면 좌담기사 ‘행정수도…전문가들의 좌담회’도 ‘연 5000억원 이상 들 재원도 문제’라는 부제와 함께 재원조달의 문제점을 거듭 짚었다. 이 기사는 “행정수도 건설은 공업도시와 달리 90% 이상을 정부가 투자해야 하는데 2, 3년 이내에 건설한다면 연간 5000억∼6000억원씩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리즈 ‘새 서울 예진’ 3회분 기사에서도 “인구 40만의 수도 기능을 갖추려면 줄잡아 2조원이 든다. 77년도 정부예산의 3분의 2가 넘는 금액이며… 우리 경제가 과연 이러한 과중한 부담을 능히 감당해낼 것인지 문제”라고 거듭 지적했다.

이 기사는 “2조원이라면 10억원짜리 공장 2000개를 지을 수 있는 돈이다. 안보적인 측면을 제외한다면 새 수도건설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그것이 숙제다”라며 비용과 효율성의 문제를 다시 짚었다.

▽수도권 공동화와 지역소외=11일자 기획기사 ‘새 수도가 안은 문제점’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공소화(空疎化)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 기사는 “임시수도 건설을 서울의 도시기능 유지와 관련시켜 계획하지 않으면 서울은 공소화하고 임시행정수도가 본격수도로 커 가는 데서 오는 진통을 서울과 임시수도가 함께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새 서울 예진’ 시리즈 6회분 ‘전국 각지의 영향’은 기대에 부푼 충청권 반응과 함께 경기북부와 강원지역의 우려 섞인 반응을 전했다. 이 기사는 “경기도내에 펼쳐진 수도권의 개발은 크게 감속되리라는 예상이다. 강원도를 포함한 영동지방은 보다 더 절망적이다. 서울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탓으로 어느 지역보다도 침체돼온 춘천 지방은 이번 천도 구상 발표로 또 한번 개발에의 꿈에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라며 국토 균형개발상의 난점을 지적했다.

▽안보 문제=동아일보는 2월 11일자 2면에 실린 사설 ‘임시행정수도 건설의 구상’에서 “모든 일이 제대로 이룩된다 할지라도 남겨지는 문제는 국민의 안보상 심리적 불안”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설은 “유사시엔 대통령 이하 모든 중앙정부가 서울에 나와 사수의 결의를 실행으로 옮겨야 할 것이며, 그 다짐을 신뢰케 하고 국민의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군 지휘부의 서울 주재 같은 방안도 강구할 만한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새 서울 예진’ 7회분에서도 “대공방위의 측면에서 현재 북괴기의 서울 내습 시간이 발진 후 4, 5분 정도라면 새 수도는 그 배 이상의 경보방공시간을 더 갖게 되겠지만 훨씬 좁은 지역에 정부 주요기관이 집중되어 표적이 되는 일면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안보전략상의 문제점을 따졌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1977년 당시 임시행정수도 건설의 문제점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와 사설들. 왼쪽부터 '민심저류 깊이 파악'을 촉구한 기획시리즈 '새서울 예찬'마지막화(2월 19일자). 수도 이전에 따르는 재원문제 등을 논한 좌담회 기사(2월 12일자). 서울의 공소화(空疎化)문제점 등을 지적한 기획기사(2월 11일자). 국민의 안보불안 심리를 지적한 사설'임시행정수도 건설의 구사'(2월 11일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건설부 국장이 본 本報보도▼

“유신정권이었지만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비판은 상당히 매서웠다.”

1977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이 임시행정수도건설 계획을 발표한 직후 쏟아진 동아일보 등의 보도에 대해 당시 김정렴(金正濂) 대통령비서실장은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회고했다.

김 전 실장은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3개월 동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고 임시행정수도 건설 프로젝트인 ‘백지(白紙)계획’에 깊숙이 간여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고려해 안보상 임시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은 예산 문제와 서울의 공동화 현상 등을 연일 꼼꼼히 따지고 들었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처음엔 못마땅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언론의 당연한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언론의 비판을 수용해 결국 재원 확보의 어려움과 사업의 중대성, 비판여론 등을 감안해 청와대 내에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담당할 별도의 사업단을 구성토록 하는 등 사업 추진에 신중을 더했다는 것.

그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도 언론의 비판이 많았지만 정부의 꾸준한 설득과 대화로 국민도 마침내 납득을 했다. 물론 정부로서는 당시 언론보도에 당연히 불편한 입장이었다”고 회고했다.

건설부 국토계획국장으로 임시행정수도 건설 전반기 실무 작업을 지휘했던 김의원(金儀遠) 전 경원대 총장도 “동아일보를 필두로 언론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섰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전 총장은 “몇 년 동안 극비리에 준비했던 임시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1977년 발표했는데 언론의 비판이 생각보다 심해 정부 차원에서 언론의 관련 보도를 종합 분석하는 조직을 둔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라는 것이 당시 사업추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여권의 언론 비판에 대해 “70년대 임시행정수도 이전은 안보 문제라는 공공의 목적이 있었지만 이번 건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도 있는 것 아니냐”며 “따라서 정부의 언론에 대한 입장도 그때와 지금이 같을 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때의 임시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국민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국가적 차원의 정당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의 비판에도 유연한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게 김 전 총장의 설명이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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