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취임1년 주류가 바뀐다]<1>정치권

  • 입력 2004년 2월 22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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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출범과 함께 몰아닥친 ‘주류(主流)교체’의 파도가 1년 만에 우리 사회 각 분야의 권력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특히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촉발된 정치권의 ‘물갈이’ 요구는 정치권의 구질서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 틈새를 지난 대선을 전후해 정치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386’ 세대의 신진그룹이 급속히 메우고 있다. 정치권뿐 아니라 관계 문화계 재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판갈이’의 양상을 집중 점검한다.》

2003년 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 직전 여권 핵심부에서 만든 ‘정당개혁 프로그램 안(案)’이란 극비 문건의 내용은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정치권 판갈이의 완결은 2004년 총선’ ‘정치권의 기본틀 변화에 주력해야 한다’ 같은 충격적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뒤 우리 정치권에는 이 문건이 예고한 것처럼 정치권 전체의 ‘판갈이’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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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의도는 무엇인가=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 1주년 행사인 ‘리멤버 1219’ 에서 정치권을 4급수에 비유해 “4급수는 목욕도 하면 안 된다. 피부병 생긴다. 큰일 난다”며 물갈이 의지를 강조했다.

실제 노 대통령이 분당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도 바로 정치판을 갈아엎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공무원 사회는 ‘기수파괴’와 ‘발탁인사’를 통해 인적 교체가 가능했지만 선출직인 국회의원의 경우는 총선을 통해서만 물갈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총선 올인’도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분석이다.

▽검찰과 시민단체는 판갈이의 두 축?=검찰이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에 대해 불법 대선자금 모금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지난해 9월. 대선자금 수사는 그로부터 벌써 5개월여가 흘렀지만 ‘출구조사’가 본격화하면서 정치권은 갈수록 긴장 상태다.

과거처럼 검찰수사에 청와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검찰수사가 결과적으로 구질서의 해체와 인적청산의 기폭제가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시민단체들까지 나서 낙천운동으로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2004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1, 2차 낙선운동 대상자만도 109명. 명단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배가 주목된다.

▽수많은 전사자(戰死者)=이미 20여명의 의원이 구속되거나 수사 대상에 올랐고 30명이 넘는 현역의원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불출마 선언을 했다. 검찰수사로 정치생명이 위태로운 인사들은 공교롭게도 ‘구시대’(앙시앙레짐)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회창(李會昌)계가 된서리를 맞았다. 서청원(徐淸源) 김영일(金榮馹) 최돈웅 신경식(辛卿植) 의원 등이 모두 친창(親昌)계로 지난해 대선을 주도했던 인물.

또 2002년 대선 당시 반노(反盧)그룹으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후단협’ 멤버들도 수난을 겪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핵심 인사 역시 개인비리와 대북불법송금사건 등으로 대부분 투옥됐고 한화갑(韓和甲) 의원마저 불법경선자금 모금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노 대통령의 라이벌이었던 이인제(李仁濟) 의원도 한나라당으로부터 ‘영입비용’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김대중-이회창’ 시대의 주역들은 거의 퇴출되고 있는 셈이다.

▽신진세력의 약진=열린우리당에 진입한 유시민(柳時敏) 의원 등 개혁당 출신 인사들은 강한 응집력을 보이며 ‘당중당(黨中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와 중앙위원 선출, 각 지역 경선과정에서 개혁그룹을 떠받치는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로 부상했다.

‘국민참여 0415’를 중심으로 한 노 대통령의 외곽 그룹도 정치권의 인적청산과 세대교체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다. ‘공급자 중심의 정치’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 정치권은 풀뿌리 수요자들의 취향에 맞게 변신을 강요받고 있다.

▽‘판갈이’ 그 다음은?=‘포스트 3김(金)’ 시대를 위한 해체 및 청산작업과 함께 ‘이미지 정치’라는 개성과 대중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콘텐츠’, 개혁의 내용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빈 공간은 만들어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방향성이나 이념, 그리고 구체적인 인물은 아직 시야에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의 판갈이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4·15 총선을 통해 1차적인 정리가 이뤄질 전망이다.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통계로 본 盧대통령 1년▼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모두 1314회의 공식일정을 가져 하루 4.3회꼴로 각종 회의 주재나 외빈 접견 등의 행사를 치렀다.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연간 1000회에 못 미치는 일정을 소화했던 것에 비춰볼 때 50대 ‘젊은 대통령’으로서의 활동력을 보여준 셈이다.

노 대통령은 또 미국 일본 중국 등을 5차례 해외 순방했고, 16회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토론공화국’을 표방한 노 대통령의 각종 회의 참여가 잦아지면서 대통령 정책지시 사항은 377건에 이르렀다. 또 ‘로드맵(road map) 정부’라는 별칭에 걸맞게 △정부혁신 △동북아경제중심 △신노사관계 △신행정수도 등 각 분야의 국정과제 로드맵 253개가 마련됐다.

당정분리를 표방한 노 대통령은 여야 지도자들과도 자주 만났다. 여당 면담 18회, 야당 면담 13회, 여야 합동면담 8회 등 정치 지도자들과 모두 39회 회동을 가졌다.

브리핑 시스템을 도입한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직접 18회의 기자회견 또는 간담회를 갖는 등 200회의 브리핑을 실시했다. 반면 언론 보도에 대한 정정 또는 반론보도 신청, 민형사소송 제기 등 대응조치는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를 통틀어 267건이나 됐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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