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350~400억 발언]‘또다른 불씨’…불법자금 의혹만 증폭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50분


코멘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9일 지난해 대선자금의 총 규모에 대해 400억원 미만이라고 밝히고 나선 것은 ‘10분의 1’ 발언을 계기로 확산되고 있는 불법 대선자금 논란을 진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준비 없는 발언’으로 혼란과 논란만을 가중시킨 셈이 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이 정도 쓰고 당선됐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며 자신이 쓴 대선자금 총액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또 “주유소 2곳이 있는데 한쪽에서 몇 만원짜리 판촉물을 펑펑 뿌리면, 성냥이라도 내놔야 하지 않느냐. 안 그러면 그 주유소는 망한다”고 한나라당과 자신의 대선자금을 비유해 설명했다. 이어 “‘10분의 1’이 있더라도 염치없이 변명 드린다”고 말해 자신의 발언이 일부 측근의 불법자금 수수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썼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18일 충북지역 언론사 합동회견에서도 “대선자금 총액은 아무리 계산하고 또 해봐도 수백억원을 절대 넘지 않는다”며 “2000년 미국 대선자금이 4조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선진국에 비해 대단히 검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대선자금 총액’ 쪽을 잇달아 강조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적은 규모의 선거자금을 사용했다’는 취지를 강조하려 했던 듯하다.

‘차떼기’식으로 거액의 불법대선자금을 조성한 한나라당과는 분명하게 다르다는 차별성을 강조해 국민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리려는 생각이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은 철저한 사전조사를 전제로 한 계산된 발언 같지는 않다.

청와대측도 이날 “자체적으로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일축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발언은 ‘10분의 1’ 발언을 물타기 하기 위한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문제는 대선자금과 불법자금의 규모 문제와 별개로 노 대통령이 또 다시 대선자금 규모를 구체적인 숫자까지 거론하고 나섬으로써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검찰 수사에 압박을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14일 4당대표 회동 때의 ‘10분의 1’ 발언 이후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대선자금에 관한 언급을 피해 왔다. 그러나 19일 또 다시 대선자금 규모에 관한 민감한 발언을 함으로써 또 다시 부적절한 발언이란 비판과 함께 대선자금 규모를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켰다.

실제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 사실이 알려진 직후 청와대 참모진은 “또 무슨 말을 한 거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350억 이상 썼다면…당선무효線 넘지만 시효지나 선거무효소송엔 상당한 영향

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언급한 대로 ‘노무현 후보’의 지난해 대선자금 총규모가 350억∼400억원이라면 중대한 법률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선 선거법이 규정한 ‘당선 무효 사유’에 직접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법에는 ‘선거비용 제한액의 200분의 1 이상 초과지출하고 회계책임자가 징역형 이상을 선고받을 경우 당선 무효’(제263조)라고 명시돼 있다.

대선에서 선거비용 제한액은 341억8000만원이었기 때문에 선거법상 당선 무효가 되는 금액은 여기에 200분의 1인 1억7000만원을 더한 343억5000만원부터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350억∼400억원은 이미 이를 초과한 것이어서 선거법만을 따지면 대통령 당선은 무효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당선 무효 소송은 공소시효가 대선 후 6개월이어서 결론적으로 당선 무효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권찾기 시민모임’이 제기해 현재 대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선 무효소송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법조계도 같은 해석을 내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규모를 언급한 데 대해 “대통령 스스로 자신이 당선 무효라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라며 공세를 취했다.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범죄사실을 밝혔으니 대통령직을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박진(朴振) 대변인도 “대통령이 불법자금의 규모를 언제 어떻게 파악했는지가 중요하다”며 “대선 후보로서 회계책임자의 보고를 받고 안 것인지, 대선자금을 수사 중인 검찰에서 수사 내용을 보고받았는지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민주당도 “노 대통령이 적게는 70억원, 많게는 140억원의 불법 자금을 썼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노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고 나서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청와대는 뒤늦게 불끄기에 나섰다.

윤태영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350억∼400억원 발언은 대선기간 사용한 정당 활동비(80억원가량)까지 감안해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당선 무효, 최소한 선거 무효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야기될 수 있으며 윤 대변인의 해명대로라면 법적 시비를 벗어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