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특검 거부]대화 실종… 死活건 정면대결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8시 44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특검법안 거부권 행사와 국회 등원거부라는 강수(强手)를 동원해 전면전에 나선 데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앞으로 4년여의 임기를 남겨놓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를 돌파해야 하고,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원내 1당의 위치를 지키는 것은 물론 총리선임권을 통한 행정부 권력의 반분(半分)을 겨냥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이틀 앞둔 23일 미리 전면투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이나, 노 대통령이 25일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한나라당을 향해 ‘다수당의 횡포’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협박’ 등의 언사를 동원해 맹비난을 퍼부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점에서 양측의 대치구도는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특검법안에 대한 재의(再議) 표결을 거부한 채 당분간 정국을 ‘특검 대치’ 쪽으로 몰아가면서 대선자금 수사 국면을 뚫고 나간다는 전략이다. 자칫 재의결을 추진했다가 부결될 경우 책임론에 휘말려 당 내분이 격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또 전면전을 통해 반노(反盧) 전선의 주도권을 선점하면서 총선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내년 1월쯤 민주당, 자민련과 함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의 공론화 작업에도 나선다는 복안이다.

반대로 노 대통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지렛대로 삼아 정치개혁을 이슈로 부각시키면서 기존 정치권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안을 거부한 데에도 대선자금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검찰의 기를 굳이 꺾을 이유가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청와대는 다음달 초부터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한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가 시작되고, 수사결과가 발표되면 현재의 정치권이 사실상 ‘해체 직전의 상황’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우선 한나라당은 예산심의 거부 등 극한 투쟁에 대한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당의 전열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큰 데다 야권 3당의 공조도 장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청와대 역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쟁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전격적으로 특검법안의 재의 표결에 응하거나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노 대통령이 당초 공언한 대로 특검법안을 내놓는 등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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